재태크 2008. 2. 10. 18:57
[2030 와글와글] 대학생 재테크 열풍

요즘 젊은이들의 중요 화두 가운데 하나는 돈 모으기다.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삼일절(31세라면 절망)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20대의 사정은 절박하다. 젊어서 돈 모으는 비법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대학가의 재테크 특강은 연일 만원이다.

그러나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섣불리 다단계판매에 손댔다가 줄줄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주식투자 실패로 학비를 날린 대학생도 흔하다. 억대의 재산을 굴리는 대학생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다.

20대의 재테크 열풍에는 찬반이 엇갈린다. '빌 게이츠도 20대에 승부를 걸었다'는 긍정론과 '너무 일찍 모험할 필요는 없다'는 경계론이 맞서고 있다. 증권가의 전문투자가와 대학생 투자의 달인이 대담에서 만났다.

사회 = 이철호 논설위원

-요즘 20대의 재테크 바람은 어느 정도인가.

▶이재호 본부장=대학가에 다섯 번 특강을 나갔는데 100명 이상씩 몰리기도 했다. 대학생 주식 동아리가 초빙하는 경우도 흔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열기는 대단하다.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문화 자체는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질문 수준이 기대에 못미쳐 실망한 적이 많다.

▶이재완 대표=요즘 대학 주식 동아리들은 신입회원들로 넘친다. 몇몇 대학의 주식 동아리는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서울 강남의 호화빌딩에 간 적이 있는데 다단계 회사에도 대학생 차림의 20대 남녀들이 넘치더라. 재테크 열기가 지나치면 묻지마 투자나 다름없게 된다.

-20대 주식 재테크 성과는 어떤가.

▶이재호=20대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극단적이다. 종자돈이 적고 굉장히 모험적이기 때문에 쉽게 쪽박을 찬다. 그러나 시장 흐름에 대응하는 순발력이나 직관력이 뛰어난 20대는 의외로 큰 성과를 내기도 한다. 오히려 30대와 40대 초반의 수익률이 저조한 편이다. 세상을 어느 정도 알고 안정된 가정도 꾸리는 이 무렵의 투자가들은 손실에 대한 공포 본능이 커 좋은 기회가 와도 작은 수익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이재완=주변에서 주식으로 학비까지 날리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처음 투자 동아리를 시작한 3명도 실패를 많이 했다. 나도 원금까지 까먹는 깡통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1999년, 2000년, 2001년 이렇게. 부모님 사업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종자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때 선물.옵션 같은 위험한 파생상품에도 손을 댔는데 결국 본전만 남았다. 그후 안정적인 가치투자를 통해 제법 성과를 내고 있다. 지금은 대학생 치고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억대라는 사실을 빼놓곤 공개하기 어렵다. 영업비밀이다.

-20대의 주식투자는 위험하다고 보는가.

▶이재호=주식투자에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부하면 되고, 노력하면 누구나 돈을 벌 것 같은 투자 분위기가 있는데, 일반인의 주식투자는 기본적으로 동전을 던지는 것과 같다. 상승곡선과 하락이 나오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른바 확률론적 퇴보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테크 문화, 특히 젊은 투자자들 사이에는 수익률 중심의 이른바 탐욕투자 성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 문제다.

▶이재완=시장이 좋을 때 수익을 내는 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같은 20대 투자가들은 그 수익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좋게 말하면 도전적인데, 젊으니까 욕심도 많다. 제대로 된 투자철학을 세우기까지 지나친 베팅은 위험하다고 본다.

-투자수익률이 높으면 최고 아닌가.

▶이재호=1000만원이나 10억원, 100억원의 운용방식이 같을 수 없다. 100만원이라면 심리적으로 손실 총액이 적기 때문에 1000%, 2000%의 수익률을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100억원짜리 펀드에 200%의 수익률은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로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과거 투자수익률이 좋았다고 해서 뽑아오면 막상 그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재완=수익률만 보고 판단하면 실패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수익률의 질은 따져봐야 한다. 요즘은 제도권의 대형 증권회사를 능가하는 재야 고수들도 많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재야의 고수다. 단기적으로 시장흐름에 잘 대응하면서 중장기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게 최고다.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

▶이재호=따고 잃는 주식이라는 함수에 시간이라는 변수를 적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기적으로 성장할 만한 주식에 오랫동안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런 시장순응적인 장기투자가 이른바 가치투자다. 또 재테크는 돈을 불리는 것도 불리는 것이지만, 원금을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은 첫째 원금을 잃지 말라, 둘째 이 첫째 원칙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 20대 주식투자자들의 재테크는 단기에 너무 돈을 불리는 데만 맞춰져 있다.

▶이재완=경제가 선진국이 되고 저금리 기조로 갈수록 주식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해 보니까 직접 주식을 운용하는 것보다 전문가가 운용하는 펀드를 잘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런 버핏이 가장 성공한 투자자라고 한다. 그런데 워런 버핏에게 돈을 투자한 사람을 더 성공적인 투자자라고 볼 수 있다. 자기 본업을 하면서 재테크에서도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시적으로 사회와 사람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자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선택해 그 펀드에 투자하는 쪽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다.

-그래도 20대부터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 상황이 아닌가.

▶이재호=주식투자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 될 것이다. 과거 부채의 주체였던 기업이 이제는 저축의 주체가 되고 있다. 부동산이나 예금보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 즉 주식이 개인의 금융자산 운용에서 중심이 될 것을 확신한다. 이제는 투자의 목적도 인생 전체의 계획과 연계돼야 할 것 같다. 20대에 어떤 인생 철학을 갖느냐가 30대 이후 나머지 인생을 제대로 사는 토대가 된다. 재테크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재완=아마추어와 프로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공정공시 제도가 도입됐고 무료로 접할 수 있는 투자정보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대학생이라고 기업에 찾아가면 증권사 전문가들의 기업탐방이나 전문적인 기업설명회 때와는 아무래도 대접이 다르다. 다만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문서로 보는 것과 전화로 문의하는 것, 회사에 직접 가서 담당자와 얘기하는 것과는 분명히 정보의 질에서 차이가 난다.

-20대의 장기적인 자산관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재호=주식투자 역시 자산관리의 하나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증권사도 과거처럼 주식매매의 귀재를 찾는 데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우수 펀드매니저 만큼이나 마케팅.세일즈에 능력있는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내에는 1000조원이 넘는 금융자산이 갈 곳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기가 나쁘지 경제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미래가 불확실하고 유동성 쏠림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안정적인 부동산에 너무 치중하는 것 같다.

▶이재완=현실적으로 부동산이나 채권은 20대 젊은이의 자금능력 범위를 벗어나 있다. 얼마 전에 동아리 차원에서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비교한 적이 있다. 결론은 부동산은 주식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는 것으로 나왔다. 올바른 투자전략을 세운다면 주식투자도 괜찮다. 다만 잉여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재테크인데, 본업을 내팽개치고 재테크에만 매달려선 곤란하다.

-주식투자에 입문하려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재호=재물을 키우는 재(財)테크도 있지만 재능을 키우는 재(才)테크가 더 중요하다. 대학생 투자자들이 자칫 시장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지금은 알게 모르게 사회와 미래에 불안을 느끼다 보니 반사적으로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러나 20대에 재능을 닦지 않으면 40, 50대에 능력이 없어 큰돈을 벌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고객들을 살펴봐도 대개 큰돈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버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투자철학도 갖추고 정보와 경험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산은 서서히 증가하다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가 있다. 재능과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언젠가 마주칠 이런 임계점을 기다리는 것도 올바른 전략의 하나라고 본다.

▶이재완=재테크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고, 또 꼭 해야 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너무 뺏기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7년의 투자경험을 돌아 보면 시간낭비가 많았다. 열정만 넘쳐서 잘못된 전략에 빠지기도 했고, 선물.옵션으로 7개월 만에 400%의 수익을 내는 바람에 본심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투자를 즐겼고 재미도 있었다. 요즘에는 돈을 벌려고 주식에 뛰어들려는 후배들에겐 웬만하면 손대지 말라고 충고한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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