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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즐거운 사람들의 생생한 비법 공개

포크다이너 2009. 6. 23. 00:15

공부는 먹기 싫은 쓴 약 같다. 자꾸만 미루고, 막상 하면 온몸이 배배 꼬이는 것이 꼭 닮았다. 여기, 공부가 달콤한 사탕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잘난 인물들의 흔한 성공담은 아니다. 평범한 학창시절 속에서 공부에 대한 열망을 찾아낸 비법 공개다. 다른 게 있다면 이들은 그저 치열하고 절박하게 꿈을 향해 달렸다는 것뿐. 공부는 꿈을 향한 계단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즐거운 고통’이었다는 것뿐.


 

part 1  우리는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니에요!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  고승덕

고시 3관왕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서울대생이 있다.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것도 모자라 이듬해 행정고시 수석과 외무고시 차석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건 그가 서른도 되기 전의 일이다. 아마도 고지식한 외양의 지독한 공부벌레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TV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해 재치와 언변을 자랑하는 걸 보면 틀린 예상이다. 애널리스트를 거쳐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까지 된, 언제나 기분 좋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주인공은 바로 고승덕이다.

하나도 합격하기 힘든데 무려 3개의 고시, 그것도 최연소, 그리고 수석과 차석이라는 기록까지 남겼기에 고승덕은 공부 비법에 대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을 터. 하지만 막상 그가 밝히는 비법은 너무나 단순해 거짓말 같다.

“제 약점은 기억력입니다. 같은 교재를 놓고도 남들이 세 번 볼 때 저는 열 번씩 봐야 외울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죽도록 공부했습니다. ‘엉덩이에 땀띠 날 때까지’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정말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더니 엉덩이에 땀띠가 나더라고요. 피곤했지만, 인생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느 학생들처럼 고승덕 역시 집중력과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색색 볼펜으로 교재를 물들이기도 했고, 밤새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을 쫓으며 공부하기도 했다. 체력이 부실한 사람이 온갖 약을 섭렵하듯, 그 역시 여러 가지 공부 방법을 써보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  

 
▲ 고시 3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고승덕은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도 고승덕은 꿈을 향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서울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에 귀국, 수원지법 판사로 임명되었지만 2년 후 다시 하버드대와 콜롬비아대에 진학해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변호사가 된 뒤에도 국제변호사, 펀드매니저, 투자자문회사 대표 등을 맡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변주해 나갔다. 모두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간절한 노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과거에 매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만 생각하면 제자리에만 머물게 되고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최고는 내가 정하는 것  장한나

선현들의 말대로라면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에 그쳐야 한다는데, 첼리스트 장한나는 무려 20년이 다 되도록 ‘신동’ ‘천재’ 소리를 듣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사실 그녀는 ‘공부’도 잘한다. 고교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장한나를 더욱 우러러보게 만든다. 수많은 연주 일정 속에서도 장한나는 틈틈이 교과서를 펼쳐놓고 숙제를 하고, 지도교사와 이메일로 소통하며 공부를 놓지 않았다.

여기에는 부모의 올바른 선택도 한몫했다. 줄리어드 예비음대와 커티스음악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장한나의 부모는 뉴욕 콩거스 로크랜드 컨트리 데이 스쿨이라는 사립학교를 택했다. 아이가 음악에만 몰두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그녀는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첼리스트의 행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의아한 선택이다.

“이 공부가 음악에 도움을 주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음악과 철학 공부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 다 마음을 예민하게 다듬어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감수성은 음악과 철학을 하는 데 있어 모두 중요한 요소입니다.”

 
▲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을 지휘하고 있는 장한나.

장한나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연주는 남녀노소, 시공간을 뛰어넘어 심금을 울렸다. 도무지 나이를 예측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연주 앞에 사람들은 찬탄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상형이 변하잖아요. 그처럼 제가 생각하는 최고 또한 변해요. 최고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봐야죠. 저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최고를 따라갈 뿐이에요. 아무리 주위에서 ‘넌 최고야!’라고 칭찬해도, 제가 생각하는 최고는 이미 바뀌어버린 걸요. 남들의 평가보다 제 속의 최고가 중요하죠. 제가 갈 수 있는 길이 늘어나는 걸 느끼는 게 재밌어요.”

장한나는 결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과시하기 위한 공부, 무언가 남겨야만 하는 공부보다 공부를 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달달달 외워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보다 어떠한 문제든 그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고민하고, 부딪히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바로 공부의 재미라는 걸 그녀는 이미 맛보았기 때문이다.



part 2   자기 주도 학습이 진정한 공부다!

왜 공부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라  박영아


 
▲ 박영아 의원은 퀴리부인 같은 물리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했다.

지난 18대 총선에 당선된 박영아는 물리학자 출신의 국회의원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른이 되기 전에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고, 한국물리학회 부회장과 제3차 세계여성물리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가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1979년 당시에는 과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그만큼 여자 물리학도가 드물었다. 자연과학대 전체 정원의 여학생 비율은 10%에 그쳤다.

박영아는 시험에 붙기 위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명확했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어서 절로 공부가 되었다. 공부법은 간단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이후에 반복학습을 하는 것. 주변 사람들은 박영아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녀는 수업시간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배운 것들을 100%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집중력은 공부의 당위성이 확실할 때 생겨납니다. 집중력이 싹트면 더 강화시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저는 독서를 하면서 집중력을 키웠습니다.”

박영아는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했다. 당장의 공부에 필요 없는 것 같아도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문학전집, 역사책,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과학 분야 서적들도 독파했다. 특히 과학책을 읽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 생겼고, 결국 현대물리학에 빠져들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퀴리부인을 존경했고, 그녀처럼 멋진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잘 땐 자고 공부할 때는 철저하게 집중했습니다. 모든 시간에 다 집중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또 쉬는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잘 활용했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공부하면 집중력 없이 오래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낫거든요.”

별다른 목표의식 없이 외부의 강권으로 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박영아는 안타깝다. 그런 공부는 평생을 이끌어갈 힘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꿈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자신의 호기심을 채울 공부를 하라  송명근

흉부외과 전문의 송명근은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의사다. 그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타국에서 그를 찾아온다. 심장수술의 절반이 실패로 돌아가던 시절, 의대생이 된 송명근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한국에 돌아와 1992년 국내 최초로 심장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5년 뒤에는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무사히 해냈으며, 심장 이식수술 성공률은 2% 모자란 100%. 심장판막 장비를 개발해 번 수백 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장을 쓰고 공증을 받아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 명의 의사로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송명근.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성적표에는 ‘미’ ‘양’이 수두룩했고, 고3 때는 전교 석차가 280등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고 미국 의사 자격시험까지 합격할 수 있었을까? 그의 공부 비결 또한 물리학자 박영아와 같다. 바로 ‘자기 주도 학습’을 한 것이다.

송명근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부했다. 관심 가는 분야의 책 읽기를 좋아해 도서관, 책 대여점,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책들을 읽어나갔다. 혹 책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깊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수업은 늘 뒷전이라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든든하게 후원해주던 아버지마저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당시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송명근은 2학기에 들면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25등이던 성적이 단숨에 1등으로 올랐다.

 
▲ 세계적인 흉부외과 전문의 송명근은 ‘자기 주도 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다양한 지식을 쌓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버님께 1등 성적표를 보여드렸더니 그제야 안심하셨죠.”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성적은 중간 정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세 1등을 차지했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석차가 280등까지 내려갔다. 대학을 가긴 가야겠고, 별 수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대입 시험이 겨우 6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잠을 줄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수학과 과학 분야에 탄탄한 기초지식을 쌓은 뒤라 큰 난관은 없었다. 모의고사 결과 다시 전교 1~2등이 되었다.

“시험을 위해서보다 제 호기심을 위해 공부했던 게 오히려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낳았어요. 공부를 억지로 하지 않고 언제나 재미있게 했죠. 지금도 아이들에게 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요. 그보다는 사물에 대한 판단 능력, ‘왜’ ‘어떻게’라는 의문을 갖도록 유도하죠.”

공부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공부는 평생을 간다는 것을 송명근의 삶은 증명하고 있다.



part 3   독서만 한 게 없습니다

책이라는 위대한 스승  최재천


한눈에도 파리 한 마리 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순한 인상의 최재천은 생물학자다. 서울대 동물학과 재학 시절, 하루살이 연구를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교수의 열정에 반해 개미와 사회성 곤충 연구에 빠져든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생태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 강단을 거쳐 현재는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실 최재천의 어린 시절 꿈은 시인이었다.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공부와는 큰 인연이 없는 아이였다. 방학만 되면 그리던 고향에서 마음껏 뛰어놀았고,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며 빈둥거리기를 좋아했고, 책과 그림을 좋아해 문예활동에 매진했다. 한마디로 한량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대학에 진학할 때쯤에는 성적이 상위권에 들었지만, 막상 대학시험에는 두 번이나 탈락했다. 힘들게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사진 동아리를 만들고, 독서 동아리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대학교 4학년 때, 하루살이를 연구하러 한국까지 온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그분의 조수 역할을 했습니다.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한국이 그렇게 방문한 나라 중 102번째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도 있구나. 바로 그런 모습이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죠.”

미국인 교수는 하버드대 윌슨 교수에게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최재천에게 하버드대 진학은 꿈같은 일이었다.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였다. 자신뿐 아니라 친구들 역시 의심한 일이다. 그때 최재천은 말했다. ‘도전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결국 그는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 합격해 그렇게 꿈꾸던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 하버드대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 재회한 최재천 교수.

한 포털 사이트에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서재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얼마 전 최재천 교수가 그 코너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랐다. 최재천은 전체를 아우르는 공부를 하려면 독서가 필수라고 말한다.

“저는 학생들에게 시험 대신 책을 많이 읽게 하고, 토론이나 과제를 함께하도록 해서 그것으로 평가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당장의 시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훗날 사회에 나왔을 때 독서는 분명 좋고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최재천은 지금은 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통섭이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적으로 학문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폭넓은 사고는 아마도 꾸준한 독서습관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책은 그에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쳐준 또 하나의 스승이다. 


책에서 인생을 묻다  홍정욱

“공부를 하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불확실한 내일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공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영화배우 아버지와 미모의 어머니에게서 좋은 유전자만을 골라 받은 듯 수려한 용모를 한 젊은이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7막 7장’이라는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온 나라가 한 젊은이의 짧은 인생에 감탄사를 남발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하기까지의 유학기를 소개해 신화적 인물이 되었던 홍정욱. 삼십대에 언론사 대표가 되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더니 2008년에는 18대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이 되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이루어내는 행운아, 천하의 복 받은 자로 보이는 그에게는 과연 어떤 비장의 무기가 있을까.

책! 그것이 홍정욱의 무기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그는 케네디 대통령의 전기를 읽고, 그를 인생의 모델로 삼았다. 어린 중학생이 머나먼 타국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책 한 권의 힘이었다. 그저 평범했던 아이는 책 속에서 케네디를 만나고 인생의 항로를 결정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졸업한 초우트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보내달라고 영어로 편지를 보내고, 결국 그 학교에 입학하였다. 홍정욱이 하버드대 진학을 결심한 것도 또 다른 책 덕분이다.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유학 수기집인데, 이 책의 첫 장에 케네디 대통령의 모교가 바로 하버드대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후 홍정욱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버드대에 진학할 것이라 굳게 결심했다.

홍정욱은 초우트고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 진학하여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에 교환 학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고, 베이징대에서 1년간 수학한 후, 스탠퍼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공부에 있어서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거친 그는 성공적인 공부의 비결로 철저한 준비를 꼽았다. 있는 재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아버지 남궁연을 꼭 닮은 홍정욱.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케네기 전기’였다.


“남보다 숫기가 없고 배포도 부족하고 지적 능력도 평균인 것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달변가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준비를 하지 않고 잘했던 연설은 하나도 없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100% 공감합니다. 제 이름 석자가 세상에 알려진 뒤 이런저런 인터뷰를 했지만, 언제나 사전 연습을 했어요.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합니다. 내공이 쌓이고 순발력이 생겼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맙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실력은 덤으로 생깁니다.”

그의 성공적인 인생은 유학을 통해 시작되었고, 그 유학은 그 어느 누구의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 그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그의 모습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책은 닮고 싶은 인물을 만나게 해주었고, 그 인물과 유사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야말로 책에서 인생을 찾은 것이다.

“독서는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집니다. 독서만으로도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이 5년 뒤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는 현재 만나는 사람과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결정한다는 말은 진정 옳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