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9. 12. 21. 12:01



지난해 3월 21일, 캠리ㆍ프리우스 등을 앞세운 도요타자동차가 한국 진출을 선언한 바로 다음날 주요 일간지 한켠에 한국토요타자동차가 판매대리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내용은 단 한 줄로 매우 간단했다. '토요타 브랜드의 한국 판매를 위한 새로운 파트너를 찾습니다.' 광고가 나가기 무섭게 문의가 쇄도했다. 관심을 표명한 곳 중에는 기존 수입차 딜러권을 갖고 있는 기업부터 국내 최대 기업 방계 회사까지 다양했다. 기존 사업 분야를 불문하고 이런저런 경로로 관심을 표명한 곳이 18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토요타 측은 공고가 나간 지 한 달 뒤 사업계획서를 받았다. 진지하게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이 대기업 10곳을 포함해 70여 군데였다. 한국토요타는 처음부터 서울 지역 주요 거점과 지방 2곳 등 5곳에만 전시장을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경쟁률은 14대1을 넘었다.

서류 검토 끝에 사업계획서 설명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곳은 다섯 중 하나에 불과했다.

권역별로 서너 개 기업이 경합을 벌인 끝에 8월 서울 지역에 D&T모터스(동양건설산업)ㆍ효성ㆍLS네트웍스가, 분당 지역에 신라교역, 부산 지역에는 동일모터스가 각각 선정됐다. 이들은 14개월여를 준비한 끝에 두 달 전 매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기라 다이조 한국토요타자동차 사장은 "대기업 한 군데서 딜러권 전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목표는 판매대수 신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충실한 서비스 제공과 지역사회 공헌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전했다.

딜러 모집에 참가했던 한 기업인은 "우리 측도 반신반의하며 응모했지만 다른 기업들 열기도 깜짝 놀랄 만했다"며 "특히 유수 대기업들이 이렇게까지 딜러사업에 관심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한국에서 수입차 딜러사업 인기가 실로 대단한 듯하다"고 회고했다.



한 해 신차 수요 130만대 규모인 한국 자동차시장을 95% 점유하고 있는 국산차들은 본사 차원에서 직접 판매망을 구축해 차를 팔고 서비스까지 맡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나머지 약 5% 시장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입차들 간 전쟁 이면에는 딜러들의 전투가 숨어 있다.

목 좋은 곳에 매력적인 전시장을 내서 손님을 끌고, 차를 팔고, 사후서비스까지 책임져 재구매 고객을 확보하는 일은 본사가 아닌 딜러들이 하는 일인 것이다.

◆ 수입차 역사 산증인들

= BMW코리아, 벤츠코리아, 볼보코리아, 폭스바겐코리아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국 지사를 설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에서 이른바 '외제차'를 팔았던 사람들이 있다.

한성자동차(벤츠), 코오롱상사(BMW), 효성물산(아우디ㆍ폭스바겐), 한진(볼보), 동부산업(푸조), 두산(사브), 금호(피아트) 등이 그들이다.

1987년 정부는 우선적으로 2000㏄ 이상 대형차와 1000㏄ 미만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했고 올림픽이 열린 88년 4월에는 전 배기량에 대해 수입 제한을 풀었다. 지금은 한국 지사에서 차를 공급받아 파는 일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들 지사가 생기기 전에는 외국에서 직접 차를 들여오는 임포터 업무까지 했다.

이들은 1987~88년 판매대수 200여 대에 불과했지만 1990년 2300여 대를 팔면서 수입차 시장에 싹을 틔웠다. 기아차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세이블을 생산ㆍ판매한 숫자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폭발적 증가세였다.

좋았던 분위기는 그러나 너무 짧았다. 외환위기를 맞아 과소비 풍토를 지탄하는 분위기가 퍼졌고 수입차는 희생양이 됐다. 97년 8000대까지 치솟았던 수입차 판매대수는 1년 만에 2000대까지 뚝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BMW와 크라이슬러, 포드가 직접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법인을 설립하면서 임포터가 딜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아예 사업을 접은 곳도 수두룩했다.

코오롱글로텍(코오롱모터스)이라는 이름으로 BMW 최대 딜러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코오롱은 BMW에 대한 이웅열 회장 개인적 애정 때문에 22년째 BMW 판매업을 이어오고 있다.

성수대교 남단과 도산대로가 만나는 사거리에 위치한 BMW 강남전시장은 코오롱이 87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 수입차 전시장이다. 서쪽 건너편으로는 한성모터스 벤츠 전시장이, 남쪽 건너편으로는 인피니티 매장이 경쟁하고 있다. 벤츠 옆집은 포드 전시장이다. 반경 1㎞도 안 되는 사거리에 10개 수입차 브랜드가 구애전을 벌이고 있다.

◆ 딜러업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수입차 딜러사업을 하는 기업들 중에는 유독 대기업 오너나 친인척, 2ㆍ3세, 유력 중견기업이 많다.

LS그룹이 도요타 용산점으로 딜러 업계에 발을 들였고, 효성은 한성자동차가 꽉 잡고 있던 벤츠 딜러사업에 뛰어들었다. 강남에서 혼다 딜러점을 하는 두산, 혼다 인천 남동점을 하는 피죤, 용산점을 하는 KCC모터스 등도 비교적 최근 합류했다. 아우디를 판매하는 참존모터스나 렉서스를 판매하는 센트럴모터스(GS홀딩스) 등도 마찬가지다.

영남 지역 알짜 기업 동일고무벨트 계열은 렉서스(동일모터스)와 BMW(동성모터스) 딜러망을 갖추고 있다.

수입차 업계 이단아인 SK네트웍스는 심지어 대기업 간판을 달고 '그레이 임포터(병행수입업자ㆍ메이커와 직접 독점수입 계약을 맺지 않은 채 타국 딜러에게서 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수입사)'로 나섰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車가 아닌 문화를 팔아라" 전시장은 첨단 문화놀이터



이렇듯 사돈에 팔촌까지 꼽자면 웬만한 이름 있는 기업 중 수입차 딜러사업에 관심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왜 그럴까.

업계에선 일단 진입장벽이 높지만 꾸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찮다. 도산대로 사거리 인근 전시장 평당 가격은 1억2000만~1억3000만원을 호가한다. 최근 문 연 도요타 한 지점은 매월 건물 임차료와 인건비 등 운영비만 5억~6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에 관심 많다고 선뜻 들어오기엔 부담스러운 형편이다.

수입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최근 딜러업은 사실상 부동산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누가 얼마나 목 좋은 곳에 매장을 확보하고 번듯한 건물을 올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본사에서 허가를 얻어 일단 매장을 연 뒤에는 누적 판매량이 증가할수록 부품 판매 수익과 애프터서비스 수익 등 안정적 수익 기반이 창출된다는 점이 기업들을 이끄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수입차 산업이 무르익으면 중고차 판매까지 가능하다. 유럽 등은 대부분 이렇게 하고 있다.

다만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엄청난 재고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 상황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외부 요인으로 판매대수가 뚝 떨어지면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만 원씩 차값을 깎아가며 재고를 떨어내야 하는 때도 있다. 상황이 심각할 때는 본사에서 차를 되사가기도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브랜드 간, 대리점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딜러 마진이 줄어 더 많은 차를 판매해야 하는 고통도 만만찮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주요 '수입차 거리' 땅값과 임대료가 치솟아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정재희 포드코리아 사장은 "딜러 경쟁력이 최종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브랜드 이름을 걸고 직접 소비자를 대하는 마지막 첨병들이기 때문"이라며 얼마나 건강한 딜러를 갖추고 있느냐가 브랜드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본사는 제품을 만들고 이미지 광고를 맡는다. 딱 거기까지다. '이번에 새로 나온 볼보 X60 한번 타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소비자는 볼보 본사에 전화를 걸 게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전시장을 찾아야 한다.

볼보 이름을 건 딜러점은 마치 자신이 본사인 것처럼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시연하고 구매 시 받을 혜택과 철저한 사후 서비스까지 약속한다. 차가 고객 손에 넘어가는 순간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고객과 가장 밀착해 있는 전시장들이 차를 세워 놓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하 3층~지상 7층 규모인 서울 서초동 렉서스 프라임 전시장은 새로운 딜러점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전시장에는 차량에 설치돼 있는 고품격 오디오 시스템을 체험해볼 수 있는 '마크 레빈슨 룸'과 '렉서스 시어터', 40평 규모 미술전시 공간, 그리고 골프연습장까지 없는 게 없다. 고객들은 차량 수리를 받는 동안 렉서스 고객에게만 부여된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벤츠 방배전시장은 나무 물 돌 등 자연 소재를 테마로 기계 전시장에 감성적 터치를 더했다. 1층 전시 차량 뒤에는 소나무와 돌을 이용한 담벽, 대나무를 활용한 한국식 정원을 조성했고 2층에는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와 연못을 설치해 신비로운 분위기로 꾸몄다.

혼다 분당점에는 고객 전용 홈시어터는 물론이고 유아용 게임룸도 갖추고 있어 고객들이 마음 놓고 차량에 빠져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딜러가 갖춰야 할 덕목 중 서비스 정신 함양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핵심 역량을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는 딜러점도 있다.

한국닛산 딜러점들은 공통적으로 '롤 플레잉 콘테스트'를 벌인다. 브랜드별로 세일즈 컨설턴트들이 고객 응대와 차량 판매, 사후 서비스까지 총 3단계 6개 항목을 통해 모든 컨설턴트에 점수를 매긴다. 공정성을 위해 평가 대상 차종은 테스트 시작 직전까지 비밀에 부치는 등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전시장 안에서 '3S(SalesㆍServiceㆍSpare parts)'를 모두 실현하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

'한강 이남 최고 전시장'을 표방하는 BMW 부산 해운대 전시장은 판매 서비스 부품 교환이 모두 가능한 'BMW 허브'다.

이 전시장은 BMW와 MINI 차종을 모두 전시하고 있지만 라운지를 별도로 운영해 고객 특성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BMW는 설명했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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