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2009. 9. 2. 12:30
**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01세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02세 직립보행을 시작하는 나이.
03세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
04세 ○잎부터 다른 나이.
05세 유치원 선생님을 신봉하는 나이.
06세 만화 주제곡에 열광하는 나이.
07세 아무데서나 춤을 춰도 귀여운 나이.
08세 편지를 쓸 수 있는 나이.
09세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이.
10세 관찰일기를 쓰는 나이.

11세 할머니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나이.
12세 돈의 위력을 알 만한 나이.
13세 밀린 방학일기를 한꺼번에 쓰는데 익숙한 나이.
14세 얼굴에 하나, 둘 여드름 꽃이 피기 시작하는 나이.
15세 운동장에 누워 ‘한게임 더’를 외칠 수 있는 나이.
16세 의무 교육과정이 끝나는 나이.
17세 세븐의 ‘와줘’를 목청 높여 열광하는 나이.
18세 입시 스트레스로 치를 떠는 나이.
19세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
20세 배낭여행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나이.

21세 사과같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변장하는 나이.
22세 몸무게에 민감한 나이.
23세 가끔 카드 연체료를 내기 시작하는 나이.
24세 후배들에게 사회 정의를 넘기는 나이.
25세 이것저것 다해도 시간이 부족한 나이.
26세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는 나이.
27세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기시작하는 나이.
28세 엄지 손가락 하나로 문자 보내기 힘든 나이.
29세 아무리 변장을 해도 진짜 물좋은 곳에는 못가는 나이
30세 클래식의 선율에 귀가 반응하는 나이.

31세 아직 29세라고 우길 수 있는 나이.
32세 젊은 애들과 있으면 노장이라는 말을 듣는 나이.
33세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를 너끈히 들 수있는 나이.
34세 꾸준히 민방위 훈련을 받을 나이.
35세 이제 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청 느끼는 나이.
36세 절대 E.T 생각을 못하는 나이.
37세 가족을 위해 캠코더를 사러가는 나이.
38세 책과 매우 멀어지는 나이.
39세 서서히 편안한 여행만 찾는 나이.
40세 좋은 차에 유혹을 버릴 나이.

41세 가끔은 주책바가지 짓을 해서 남을 웃기는 나이.
42세 고등학교 때 배운 물리 공식을 까맣게 잊는 나이.
43세 영어 완전 정복을 포기하는 나이.
44세 약수터의 약수물도 믿지 않는 나이.
45세 변기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찾는 나이.
46세 남자도 화장을 해야겠다고 느끼는 나이.
47세 싸울 일이 있으면 자리를 피하고 보는 나이.
48세 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이.
49세 ‘누구는 덕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이.
50세 다큐채널을 즐겨 보는 나이.

51세 약한자의 슬픔을 돌아보는 나이.
52세 ‘거 참 이상하다’라는 대사를 중얼거리는 나이.
53세 누구도 ‘터프가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 나이.
54세 꿈의 왕국을 꿈 속에서 보는 나이.
55세 근육도 광택제를 발라야 빛나는 나이.
56세 아파트가 싫어지는 나이.
57세 슬슬 하느님을 찾는 나이.
58세 가끔 늙어서 복 터진 사람을 만나는 나이.
59세 성골 진골이 아니면 뭐든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이.
60세 좋은 일이 있어도 건강이 걱정되는 나이.

61세 절대로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나이.
62세 삼사십대 여자가 무서워보이는 나이.
63세 엽기에도 무감각해지는 나이.
64세 무리하면 바로 쓰러지는 나이.
65세 긴 편지는 두 번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66세 학원간 손녀를 기다리는 나이.
67세 동갑내기 할아버지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나이.
68세 생각을 뒤집으면 민망해 보이는 나이.
69세 상을 받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나이.
70세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러도 건방짐이 없는 나이.

71세 전설을 쓰기 시작하는 나이.
72세 서서히 하늘과 가까워지는 나이.
73세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74세 잘 못을 해도 구속되지 않는 나이.
75세 살아온 이야기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76세 ‘옹’자를 부쳐 주는 나이.
77세 콘돔없이도 sex를 즐길 수 있는 나이.
78세 대사가 있으면 절대로 영화에 출연할 수 없는 나이.
79세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마지막인가’를 생각하는 나이.
80세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도 괜찮은 나이.

81세 이 자식이 뉘집 자식인지 잘 모르는 나이.
82세 뭘 하려고하면 주변 사람들이 괴로운 나이.
83세 말을 안해도 은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이.
84세 미물도 사랑스런 나이.
85세 칼을 들이대도 무서워하지 않는 나이.
86세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87세 유령을 봐도 놀라지 않는 나이.
88세 뛴다고 생각하는데 걷고 있는 나이.
89세 얼굴 주름을 볼 수도 없는 나이.
90세 주민등록번호를 잊어버리는 나이.

91세 나이 자체가 작품이 되는 나이.
92세 게임의 룰을 지킬 수 없는 나이.
93세 한국말도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나이.
94세 사람이 왜 ‘무형문화재’인지를 보여주는 나이.
95세 무엇을 하던 주위에서 신기하게 보는 나이.
96세 간지러운 코도 다른 사람이 긁어주는 나이.
97세 노인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나이.
98세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 구별이 안가는나이.
99세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있는 나이.
100세 인생의 과제를 다하고 그냥 노는 나이.

posted by 포크다이너
:
좋은글 2009. 8. 7. 00:17



젊었을 때는
인생이 무척 긴 것으로 생각하나,
늙은 뒤에는
살아온 젊은 날이 얼마나 짧았던가를 깨닫는다.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며
세월은 그대를 기다려주지 아니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모은 재물을 지니고
저승까지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삼계의 윤회하는 고통 바다의 대죄인은
보잘 것 없는 이 몸뚱이.
다만 먹고 입는 세상사에 항상 분주하여
구원을 찾지 않네.

그대여!
일체 세간사 모든 애착을 놓으라.



세상일 즐거워 한가롭더니
고운 얼굴 남 몰래 주름 잡혔네.
서산에 해 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같음을 깨달았느냐?
하룻밤 꿈 하나로 어찌 하늘에 이르리요!

몸이 있다하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아 허물어지고 정신이 떠나
모두 흙으로 돌아가리니 잠깐 머무는 것.
무엇을 탐하랴!

오늘은 오직 한 번뿐이요 다시는 오지 않으리니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몸이 늙고 병들어 떠나기 전에 오늘을 보람 있게 살자.



사람은
남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데는 무척 총명하지만
자기 비판에 있어서는 어둡기 마련인 것.
남의 잘못은 꾸짖고 자기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마음의 죄를 지은 사람이다.
죄인은 현세에서 고통받고
내세에서도 고통 받나니 죄를 멀리하라.
죄가 없으면 벌도 없음이오.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되는 것.
느끼기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나니
즐거운 시간은 천년도 짧을 것이며
괴로운 시간은 하루도 천년같은 것.
그러므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것.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사람이 어찌 행복하다 하리요.

posted by 포크다이너
:
좋은글 2009. 7. 13. 00:45

그대,

행동으로 말하라(行勝於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 불만을 나타내면 안 된다.

남을 욕하면 안 된다.

 

 

후진타오는 초등학교를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동무들보다 어렸다. 그런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쁘게 말하면 '애늙은이'였다. 그래서 무리 없이 반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후진타오 반장을 기억하는 당시 같은 반 동무들은 후진타오가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천재형 학생이었고,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춤과 노래가 후진타오 특기였다. 그리고 같은 반 동무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후진타오는 절대 남에게 기분 나쁜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다른 동무들과 절대 싸우는 법이 없었고, 모두 후진타오를 좋아했다.

1958년 중국은 전역이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광풍으로 들어갔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주중학도 오랫동안 수업을 못하고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사회실천', 즉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주로 도랑 파는 일을 했는데,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후진타오는 참을성 있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인데 불평불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니.

너 자신에게도 좋을 것 없어."

후진타오는 감숙성 공사현장에서 노동했다. 후진타오는 남방 사람이다. 강소성 태주(泰州)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비슷한 곳이었다. 운하가 많았고, 습지와 습기가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감숙성은 물이 부족한 황토지대다. 일교차도 크다. 이렇게 황량하고 건조한 곳에서 남방사람이 육체노동하며 사는 것은 분명 고생이다.

그러나 당시 후진타오와 같이 유가협(劉家峽)댐에서 일했었던 고위 기술자 왕신무가 이렇게 증언한다.

"그런데 후진타오가 불평불만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쾌활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람은 아무리 전쟁이 터져도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눈다. 이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후진타오는 청화대학에서 바쁘게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연애를 했다. 그 사람이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유영청(劉永淸)이었다.

후진타오는 이 누나와 어떻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대학 시절 다른 동기들도 잘 모르고 있다. 졸업할 때까지 이 두 사람이 연애하고 있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후진타오가 원래 남 몰래 일을 하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원래 일을 조용히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다른 연인들은 말을 안 해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후진타오는 같은 방을 쓰는 학생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정도로 후진타오는 언행을 조심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당시 중국 대학교에서 연애는 금지였다. 학교 규정이 그랬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어처구니없는 악법인데, 원래 시간과 공간이 다르면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 많은 법이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사람은 그것이 정상이라 생각한다.

같은 방을 쓰는 학우들조차 모를 정도로 몰래 몰래 연애한 사람. 현대 한국 젊은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도 배울 필요가 없는 행동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 정도로 언행을 조심하며 살아야 했다. 지금도 본질은 같다. 산이나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공인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못 배운 사람도 인생을 살며 깨달을 수 있는 당연한 진리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본보기가 있다. 다름 아닌 강택민(江澤民) 전 중국국가주석이다.

강택민은 국가주석임에도 재미있는 언행이 많았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냥 웃어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예의 없는 나라로 생각했다.

강택민은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1996년 6월 하순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스페인 국왕 옆에서 의장대 검열을 받던 강택민이 갑자기 속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 것이 아닌가! 스페인 국왕 입장이 어땠을까?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강택민은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갑자기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영어로 쭉 암송했다. 물론 자기 영어실력을 자랑하고 싶었겠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한 언행이었다. 그리고 자기 영어 실력을 자랑해서 오히려 망신당한 적도 있었다. 1999년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 공기가 맑다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Oh! It's natural gas."

'natural gas'는 사람 몸에서 나오는 가스다. 그래도 강택민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고 강택민도 사람이니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웃어넘길 수는 있다. 사실 강택민은 상해 시장으로 재임할 때 더 큰 실수를 했었다.

하루는 한 외국 귀빈을 모시고 상해시 한 공원에서 산책할 때 눈앞에서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열심히 몸을 비비며 연애하고 있는 남녀가 있었다. 강택민은 중국이 이렇게 개방적인 나라라는 것을 자기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둘이 사랑하고 있군요"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Oh! They are making love.(오! 둘이 섹스하고 있군요.)"

2000년 4월 19일 터키를 방문했을 때는 터키 대통령이 강택민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식이 있었다. 상대방이 목에 훈장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강택민이 훈장을 빼앗아 자기 목에 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강택민도 사람이며, 재미있는 돌출행동이 많았다"고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실수가 있었다.

1999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강택민을 데리고 모차르트 옛집을 방문했다. 이곳에 1785년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산 피아노가 있었다. 이 피아노는 오스트리아 사람에게 국보와 같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설명을 마치자 강택민이 갑자기 의자에 앉더니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모차르트 교향곡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혁명가곡(洪湖水浪打浪)이었다.

한 유럽 국가원수가 북경을 방문했고, 중국 국가원수가 자금성(紫金城)에서 관광안내를 하면서 "이 의자가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앉았던 의자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 유럽 국가원수가 갑자기 그 의자에 앉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중국 사람들이 이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대인관계를 발전시켜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최고의 리더(leader)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과 이야기할 줄 안다.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후진타오는 부하들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공(孔)씨 성과 구(丘)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2500년 전 이런 말을 했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자기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경우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청화대학에 비석이 하나 있다. 그 비석에 넉자가 새겨져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행동으로 말하라.(行勝於言.)'

공자는 제자인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들으면 그 사람 행실을 믿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들어도 그 사람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진정한 고수는 속수를 두지 않는다. 진정한 고수는 정석을 둔다. 정석을 두려고 열심히 땀 흘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속수가 한 번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모든 중용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묘수이며 정석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머리 잘 굴린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진정한 지름길은 굽어보인다. 말은 필요 없다. 세상 사람들은 한 두 번 속을 수 있어도 세 번 속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남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인정받는다. 그런데 잔 대가리 굴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말이 많다. "나는 아니야"라고 착각하며 산다. 자신을 제3의 눈으로 냉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이 된다.

입 속에 도끼가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도끼가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것을. 비판은 괜찮다. 비록 이것조차 너무나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비판은 괜찮다. 욕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저렇게 쉽게 욕하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은 누구라도 욕할 수 있겠다! 다른 곳에서는 나를 욕하고 있겠지.'

그리하여 외면 받는다. 잘 들어주어라. 그 다음에 좋은 말을 하라. 물론 세상에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좋다. 좋은 말도 지나치면 아부가 된다. 이런 사람이 정치계에 몸담고 있으면 간신배가 된다.

반대도 있다.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남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은 대부분 자기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다. 가장 큰 행복은 남에게 행복을 베풀어주는 행복이다. 이런 사람은 존경받는다.

자선과 기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위험한 사람이다. 심성이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남에게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 "너를 위해"라며 충고한다. 왜 남에게 충고하는가? 남에게 충고하면 자기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른바 충고라는 행위를 하면 자기 기분이 풀린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기분도 풀리면, 이 충고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뜻밖에 많지 않다. 아무리 '너를 위해' 충고해도, 상대방은 일단 기분 나쁘다.

같은 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뜻이 다르다. 무릎 꿇고 꽃을 바치며 고백한 "사랑해"와 무심코 툭 던진 "사랑해"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내뱉은 "사랑해"는 다 뜻이 다른 것이다. 충고도 때와 장소와 사람 기분과 목소리 크기에 따라 다르다. 상대방 기분이 좋기 어렵다. 충고는 쉽게 욕으로 변한다.

'나는 욕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잠자기 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좋게 말했어도 상대방이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 잘났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이렇게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머리가 굳었고, 자기 인생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극장에서 '대한늬우스'를 상영하고, 경부운하를 추진하지 않을 테니 실제로는 4대강을 강간하는 '4대강 살리기'를 해야 한다는 괴변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진실과 이치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재빨리 대응논리를 만들어 공격한다. 내 생각은 무조건 맞다. 반대의견은 경찰로 탄압한다. 그래서 이명박이 된다.

우리는 후진타오처럼 매일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한 마디 말이 칼로 변하고, 한 마디 말이 약으로 변한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도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안겨준다. 불만을 나타내지 말자. 욕하지 말자. 변명도 하지 말자. 차라리 가능하다면 남과 거리를 두면서 살자. 최소한 남에게 나쁜 짓은 아니니까.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겠는가! 스트레스는 풀어야 한다. 자기 목숨과 관계있는 일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는 섹스를 권한다. 의사들에게 물어보라. 섹스가 나쁘다고 말하는 의사 있는가?

 

섹스는 몸에 좋은 것이다.

섹스는 네 가지 의학기능이 있다.

 

첫째, 전신운동이다.
둘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셋째, 고독감을 없애준다.
넷째, 숙면을 유도한다.

그러나 섹스상대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가?

 

세상에 섹스보다 더 짜릿한 놀이가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6·25동란과 베트남전쟁을 겪은 아저씨들이 아직 기운 팔팔한 나이였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충격적인 주장.

"자기가 죽지만 않는다면 세상에 전쟁보다 재미있는 놀이가 없다."

그래서 사냥이 재미있다고 한다. 추리소설과 오락영화 중에 '살인에 재미 붙인 사람' 이야기가 많은데, 이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살인이 섹스다. 그래서 컴퓨터오락 중에 사람 죽이는 이야기가 많다.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노름도 섹스보다 재미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색욕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놀이는 절대 하지 말자. 왜 생명을 죽이는가? 왜 죽이는 놀이를 하는가? 왜 노름을 하는가? 결국 자신을 죽인다.

필자는 건강한 사람에게 암벽등반을 권하고 싶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안 하는 것이 좋지만, 건강한 사람이 암벽등반 한 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낭떠러지에서 혼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며 오히려 몸속에서 오르가즘이 일어난다. 암벽등반이 싫다면 수중다이빙도 좋다. 이것도 짜릿하다.

산과 바다 둘 다 싫다면 바둑을 권한다. 수담망우(手談忘憂)라 하지 않는가. 바둑 둘 때는 세상 걱정 다 잊어버린다.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바둑도 싫다면 여행을 권하고 싶다. 나와 다른 존재를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것. 이것도 즐거운 일이다.

자기 인생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스트레스해소법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불경·성경·코란·사서삼경을 읽고, 명상하고, 산책하고, 등산하고, 여행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가능할 때는 열심히 섹스를 한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
좋은글 2009. 5. 26. 19:28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글

독도와 한일관련 특별 성명 명연설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우리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역사의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러 일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빌미로 우리 땅에 군대를 상륙시켜 한반도를 점령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여 궁을 포위하고 황실과 정부를 협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고, 토지와 한국민을 마음대로 징발하고 군사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우리 국토에서 일방적으로 군정을 실시하고, 나중에는 재정권과 외교권마저 박탈하여 우리의 주권을 유린했습니다.

 

일본은 이런 와중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망루와 전선을 가설하여 전쟁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점령상태를 계속하면서 국권을 박탈하고 식민지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지 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입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그리고 미래의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입니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 간의 우호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이들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한일 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일본의 어떤 수사도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문화적인 교류도 이 벽을 녹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일 간에는 아직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가 획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그 위에서 독도기점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해해저 지명문제는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배타적 수역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 해역의 해저지명을 부당하게 선점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동해해저 지명문제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배타적 경제수역에 관한 문제도 더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결국 독도문제도 더 이상 조용한 대응으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입니다.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독도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습니다.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세계 여론과 일본 국민에게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끊임없이 고발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역사를 모독하고 한국민의 자존을 저해하는 일본 정부의 일련의 행위가 일본 국민의 보편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 간의 우호관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가 결코 옳은 일도, 일본에게 이로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국민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한국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과 인류사회의 양심 앞에 솔직하고 겸허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 대해,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에서 이 기준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일본은 경제의 크기에 걸맞은 성숙한 나라,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서게 될 것입니다.

 

 

 

국 민 여러분, 우리는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선린우호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지향 속에 호혜와 평등,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 왔고 큰 관계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 제 양국은 공통의 지향과 목표를 항구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합니다. 양국 관계를 뛰어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과 청산, 주권의 상호 존중이라는 신뢰가 중요합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사의 어두운 향수로부터 과감히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 평화를 향한 일본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대통령 노무현

 

 

 

 

 

노대통령 한일관계 특별담화 발표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중 25일 오전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옷깃을 여미며 보좌진들과 함께 청와대 발표장으로 입장하고 있다./박창기/정치/ 2006.4.25 (서울=연합뉴스)changki@yna.co.kr

 

posted by 포크다이너
:
좋은글 2008. 4. 4. 08:17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죽음 직전 사람들의 ‘이것이 인생’ 5가지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는가?

아침의 냄새를 맡아 본 것은 언제였는가?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우리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무심히 살아가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온다.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진리를 직시하는 순간 또 누구나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쉽게 하면서도 언젠가 정말 나에게도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리라는 것은 대부분 망각하고 있다. 어쨌든 죽음은 삶의 다른 경험들처럼 여러 번 해볼 수도, 미리 느껴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에 스스로 직면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인생과의 작별을 앞둔 사람들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을 더 원했을까? 


 

 


1 당신의 임무는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


“삶의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몇 해 전 한 병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목격되었다. 그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들의 얼굴이 몰라보게 밝아진 것이다. 한 의사가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것은 어느 청소부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의사는 아주머니의 비결을 알 수만 있다면 백만 달러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그 아주머니를 마주친 의사는 다소 무뚝뚝하게 물었다. “도대체 내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거죠?”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냥 병실을 청소할 뿐이에요.” 그녀가 어떻게 환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서 의사는 그 뒤로도 눈에 안 띄게 아주머니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별달리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뒤를 밟은 지 2,3주가 지났을 때, 아주머니가 의사를 붙잡아 간호사실 뒤켠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여러 해 전 겨울에 자신의 여섯 아이 중 하나가 몹시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머니는 한밤중에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응급실에 가서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몇 시간 동안이나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녀는 품 안에서 어린 아들이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어떤 증오나 원한, 분노도 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의사가 물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것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죠?”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죽음은 내게 더 이상 낯설지 않아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아요. 가끔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면 환자들은 몹시 겁에 질려 있어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쓰다듬게 돼요. 나는 그들에게, 나도 죽음을 보았는데 죽음이 다가와도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냥 함께 있어 줍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들 곁에 있어 주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사랑이지요.”

 

심리학도 의학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삶의 가장 큰 비밀 하나를 알고 있었다. 사랑은 바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며 돌봐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2 당신 속에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그것이 진정한 관게이다. 삶은 거울과 같다. 삶에 미소 지으라. 그러면 삶이 당신에게 미소 지을 테니까.”

 


건설 노동자 잭슨은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리고 곧 앤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앤은 생의 마지막 해가 되리라 여겨지는 날들 동안 잭슨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앤은 잭슨과 함께 보낸 두 해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사랑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걸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잭슨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과도 1년 이상 관계를 지속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잭슨이 아팠기 때문에 나는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모두 이겨 낼 수 있었어요. 잭슨을 사랑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된 인간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바로 그때 최고의,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수많은 치료법을 시도한 끝에 잭슨은 마침내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가 살아난 잭슨은 눈에 띄게 건강을 회복해 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누구도 그가 백혈병을 앓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았다. 앤은 무엇엔가 갇힌 듯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열정이 식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한쪽이 심각한 병을 앓으며 죽음을 향해 치달아 가는 상황에서 맺어진 관계의 경우,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한다. 앤의 변화를 눈치 챈 잭슨은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은 날 사랑하고 존중했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내 아내로 남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건 내가 6개월 뒤에 죽을 경우의 이야기였지. 난 죽지 않았고, 실질적인 관계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것은 평생토록 이어갈 결혼 생활의 시작이기도 해. 나를 옥죄고 있던 죽음의 굴레가 벗겨졌으니,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들만이 남은 셈이야. 난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져서 기쁜데, 당신은 마치 종신형이라도 선고 받은 사람처럼 보이는군. 난 결국 살아남게 되었지만, 결혼 생활을 지속시켜 줄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는 것 같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가 앞으로도 50년이나 남아 있으니 일상적인 일들에 잘 대처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감정에 대한 혼란스런 고민 끝에, 앤은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절박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걸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깨달았다.

“잭슨의 말이 옳았어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지키지도 못할 근시안적인 약속을 한 거죠.

잭슨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 나타나 그의 곁을 지키는 영웅적인 여인이 되는 것과, 그가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되었어요.

 

잭슨이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 준 덕분에, 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들 속에 숨어 있다는 걸 터득했어요.

잭슨의 병 덕분에 헌신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죽음이라는 극적인 요소의 도움 없이도 다시 그에게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잭슨과의 관계를 통해 앤은 자신의 내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대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나를 화나게 할 때가 많다. 그들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들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상황들은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3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을 발견하라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행동에서는 놀라운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엔 마치 “나는 한때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열심히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가 병세가 차츰 악화되고 감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면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기껏해야 그것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자신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자기 자신의 진정한 부분이라고.

 

죽어가는 한 여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누구입니까?” 그녀가 말했다.

“지금껏 내게 맡겨진 역할들 속에서 내 삶은 너무나 평범했어요.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어요. 도대체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뭐가 다를까 싶었어요. 하지만 병을 앓게 되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거나 삶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부터 끝나는 날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진실이다. 아무도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 내가 겪은 특별한 역사와 사건들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진정한 ‘나’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존재이다. 자신만이 느끼고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라.

 

 



4 고통을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한다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로부터는 상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흥미로운 점들은 다음과 같다.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 그들은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한다. 상실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라 상실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힘겨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는 잃게 될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한다. 옛 유대 격언에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이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된다는 뜻이다. 만일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과목이다.

집과 자동차, 직장, 돈과 젊음, 사랑하는 사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붙들어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자각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경험들의 소중함과 사물들의 가치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상실이 주는 고통과 배움을 통해 삶에서 하찮게 여기던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의 감정은 당신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이다.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슬퍼한 사람이나 사물이 사실은 한 번도 당신에게 소유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다. 상실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된다.


 

 

 

5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거 기억나니?” “그때 바닷가에 간 일 기억나?”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가장 즐거웠던 놀이의 순간들을 회상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더 일했어야 하는데”라거나 “근무시간이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것도 일평생 동안.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느라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느 성공한 사업가는 암과 한판 승부를 벌인 후에 말했다.

“난 곧바로 암 전문의를 찾아갔고 그 즉시 부어오른 부위를 제거했어요. 그리고 화학 치료를 받았죠. 난 부지런한 사업가에서 부지런한 환자로 변해 갔어요. 검사 결과를 꼼꼼히 확인하고, 약을 먹고, 의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병을 앓는다는 게 그렇게 큰일인 줄 몰랐어요.

화학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복직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암 때문에 이제는 내 삶도 너무 심각해졌어요. 모든 게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었고, 어쨌든 내가 살아 있음을 신에게 감사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궁금해지더군요.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남았을까? 일을 더 많이 하려고? 더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서?’ 난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공허한 삶을 살아왔는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삶의 의미를 성공에 두었고, 난 성공이라는 이름의 벽을 구성하는 하나의 벽돌에 불과했어요. 난 그런 삶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나는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었어요. 지금은 그것들을 되찾을 시간이에요.”

 

삶의 종착점에 있는 환자들은 곧잘, 자신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무한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헬렌 켈러가 말했듯이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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