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2009. 7. 13. 00:45

그대,

행동으로 말하라(行勝於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 불만을 나타내면 안 된다.

남을 욕하면 안 된다.

 

 

후진타오는 초등학교를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동무들보다 어렸다. 그런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쁘게 말하면 '애늙은이'였다. 그래서 무리 없이 반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후진타오 반장을 기억하는 당시 같은 반 동무들은 후진타오가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천재형 학생이었고,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춤과 노래가 후진타오 특기였다. 그리고 같은 반 동무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후진타오는 절대 남에게 기분 나쁜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다른 동무들과 절대 싸우는 법이 없었고, 모두 후진타오를 좋아했다.

1958년 중국은 전역이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광풍으로 들어갔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주중학도 오랫동안 수업을 못하고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사회실천', 즉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주로 도랑 파는 일을 했는데,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후진타오는 참을성 있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인데 불평불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니.

너 자신에게도 좋을 것 없어."

후진타오는 감숙성 공사현장에서 노동했다. 후진타오는 남방 사람이다. 강소성 태주(泰州)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비슷한 곳이었다. 운하가 많았고, 습지와 습기가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감숙성은 물이 부족한 황토지대다. 일교차도 크다. 이렇게 황량하고 건조한 곳에서 남방사람이 육체노동하며 사는 것은 분명 고생이다.

그러나 당시 후진타오와 같이 유가협(劉家峽)댐에서 일했었던 고위 기술자 왕신무가 이렇게 증언한다.

"그런데 후진타오가 불평불만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쾌활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람은 아무리 전쟁이 터져도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눈다. 이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후진타오는 청화대학에서 바쁘게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연애를 했다. 그 사람이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유영청(劉永淸)이었다.

후진타오는 이 누나와 어떻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대학 시절 다른 동기들도 잘 모르고 있다. 졸업할 때까지 이 두 사람이 연애하고 있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후진타오가 원래 남 몰래 일을 하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원래 일을 조용히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다른 연인들은 말을 안 해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후진타오는 같은 방을 쓰는 학생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정도로 후진타오는 언행을 조심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당시 중국 대학교에서 연애는 금지였다. 학교 규정이 그랬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어처구니없는 악법인데, 원래 시간과 공간이 다르면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 많은 법이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사람은 그것이 정상이라 생각한다.

같은 방을 쓰는 학우들조차 모를 정도로 몰래 몰래 연애한 사람. 현대 한국 젊은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도 배울 필요가 없는 행동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 정도로 언행을 조심하며 살아야 했다. 지금도 본질은 같다. 산이나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공인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못 배운 사람도 인생을 살며 깨달을 수 있는 당연한 진리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본보기가 있다. 다름 아닌 강택민(江澤民) 전 중국국가주석이다.

강택민은 국가주석임에도 재미있는 언행이 많았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냥 웃어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예의 없는 나라로 생각했다.

강택민은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1996년 6월 하순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스페인 국왕 옆에서 의장대 검열을 받던 강택민이 갑자기 속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 것이 아닌가! 스페인 국왕 입장이 어땠을까?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강택민은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갑자기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영어로 쭉 암송했다. 물론 자기 영어실력을 자랑하고 싶었겠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한 언행이었다. 그리고 자기 영어 실력을 자랑해서 오히려 망신당한 적도 있었다. 1999년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 공기가 맑다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Oh! It's natural gas."

'natural gas'는 사람 몸에서 나오는 가스다. 그래도 강택민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고 강택민도 사람이니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웃어넘길 수는 있다. 사실 강택민은 상해 시장으로 재임할 때 더 큰 실수를 했었다.

하루는 한 외국 귀빈을 모시고 상해시 한 공원에서 산책할 때 눈앞에서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열심히 몸을 비비며 연애하고 있는 남녀가 있었다. 강택민은 중국이 이렇게 개방적인 나라라는 것을 자기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둘이 사랑하고 있군요"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Oh! They are making love.(오! 둘이 섹스하고 있군요.)"

2000년 4월 19일 터키를 방문했을 때는 터키 대통령이 강택민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식이 있었다. 상대방이 목에 훈장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강택민이 훈장을 빼앗아 자기 목에 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강택민도 사람이며, 재미있는 돌출행동이 많았다"고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실수가 있었다.

1999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짤즈부르크.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강택민을 데리고 모차르트 옛집을 방문했다. 이곳에 1785년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산 피아노가 있었다. 이 피아노는 오스트리아 사람에게 국보와 같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설명을 마치자 강택민이 갑자기 의자에 앉더니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모차르트 교향곡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혁명가곡(洪湖水浪打浪)이었다.

한 유럽 국가원수가 북경을 방문했고, 중국 국가원수가 자금성(紫金城)에서 관광안내를 하면서 "이 의자가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앉았던 의자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 유럽 국가원수가 갑자기 그 의자에 앉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중국 사람들이 이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에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대인관계를 발전시켜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최고의 리더(leader)는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과 이야기할 줄 안다.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후진타오는 부하들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공(孔)씨 성과 구(丘)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2500년 전 이런 말을 했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자기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경우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청화대학에 비석이 하나 있다. 그 비석에 넉자가 새겨져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행동으로 말하라.(行勝於言.)'

공자는 제자인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들으면 그 사람 행실을 믿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말을 들어도 그 사람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진정한 고수는 속수를 두지 않는다. 진정한 고수는 정석을 둔다. 정석을 두려고 열심히 땀 흘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속수가 한 번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모든 중용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묘수이며 정석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머리 잘 굴린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진정한 지름길은 굽어보인다. 말은 필요 없다. 세상 사람들은 한 두 번 속을 수 있어도 세 번 속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남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인정받는다. 그런데 잔 대가리 굴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말이 많다. "나는 아니야"라고 착각하며 산다. 자신을 제3의 눈으로 냉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이 된다.

입 속에 도끼가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도끼가 자기 발등을 찍고 있는 것을. 비판은 괜찮다. 비록 이것조차 너무나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비판은 괜찮다. 욕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저렇게 쉽게 욕하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은 누구라도 욕할 수 있겠다! 다른 곳에서는 나를 욕하고 있겠지.'

그리하여 외면 받는다. 잘 들어주어라. 그 다음에 좋은 말을 하라. 물론 세상에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좋다. 좋은 말도 지나치면 아부가 된다. 이런 사람이 정치계에 몸담고 있으면 간신배가 된다.

반대도 있다. 남에게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남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은 대부분 자기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다. 가장 큰 행복은 남에게 행복을 베풀어주는 행복이다. 이런 사람은 존경받는다.

자선과 기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위험한 사람이다. 심성이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남에게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 "너를 위해"라며 충고한다. 왜 남에게 충고하는가? 남에게 충고하면 자기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른바 충고라는 행위를 하면 자기 기분이 풀린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기분도 풀리면, 이 충고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뜻밖에 많지 않다. 아무리 '너를 위해' 충고해도, 상대방은 일단 기분 나쁘다.

같은 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뜻이 다르다. 무릎 꿇고 꽃을 바치며 고백한 "사랑해"와 무심코 툭 던진 "사랑해"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내뱉은 "사랑해"는 다 뜻이 다른 것이다. 충고도 때와 장소와 사람 기분과 목소리 크기에 따라 다르다. 상대방 기분이 좋기 어렵다. 충고는 쉽게 욕으로 변한다.

'나는 욕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잠자기 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좋게 말했어도 상대방이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 잘났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이렇게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머리가 굳었고, 자기 인생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극장에서 '대한늬우스'를 상영하고, 경부운하를 추진하지 않을 테니 실제로는 4대강을 강간하는 '4대강 살리기'를 해야 한다는 괴변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진실과 이치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재빨리 대응논리를 만들어 공격한다. 내 생각은 무조건 맞다. 반대의견은 경찰로 탄압한다. 그래서 이명박이 된다.

우리는 후진타오처럼 매일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한 마디 말이 칼로 변하고, 한 마디 말이 약으로 변한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도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안겨준다. 불만을 나타내지 말자. 욕하지 말자. 변명도 하지 말자. 차라리 가능하다면 남과 거리를 두면서 살자. 최소한 남에게 나쁜 짓은 아니니까.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겠는가! 스트레스는 풀어야 한다. 자기 목숨과 관계있는 일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는 섹스를 권한다. 의사들에게 물어보라. 섹스가 나쁘다고 말하는 의사 있는가?

 

섹스는 몸에 좋은 것이다.

섹스는 네 가지 의학기능이 있다.

 

첫째, 전신운동이다.
둘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셋째, 고독감을 없애준다.
넷째, 숙면을 유도한다.

그러나 섹스상대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인가?

 

세상에 섹스보다 더 짜릿한 놀이가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6·25동란과 베트남전쟁을 겪은 아저씨들이 아직 기운 팔팔한 나이였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충격적인 주장.

"자기가 죽지만 않는다면 세상에 전쟁보다 재미있는 놀이가 없다."

그래서 사냥이 재미있다고 한다. 추리소설과 오락영화 중에 '살인에 재미 붙인 사람' 이야기가 많은데, 이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살인이 섹스다. 그래서 컴퓨터오락 중에 사람 죽이는 이야기가 많다.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노름도 섹스보다 재미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색욕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놀이는 절대 하지 말자. 왜 생명을 죽이는가? 왜 죽이는 놀이를 하는가? 왜 노름을 하는가? 결국 자신을 죽인다.

필자는 건강한 사람에게 암벽등반을 권하고 싶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안 하는 것이 좋지만, 건강한 사람이 암벽등반 한 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낭떠러지에서 혼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며 오히려 몸속에서 오르가즘이 일어난다. 암벽등반이 싫다면 수중다이빙도 좋다. 이것도 짜릿하다.

산과 바다 둘 다 싫다면 바둑을 권한다. 수담망우(手談忘憂)라 하지 않는가. 바둑 둘 때는 세상 걱정 다 잊어버린다.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바둑도 싫다면 여행을 권하고 싶다. 나와 다른 존재를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것. 이것도 즐거운 일이다.

자기 인생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스트레스해소법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불경·성경·코란·사서삼경을 읽고, 명상하고, 산책하고, 등산하고, 여행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가능할 때는 열심히 섹스를 한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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