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그럼 잘됐네요. 그날 제 클래스가 아침 7시에 있으니까 수업 같이 받으시고 인터뷰해요!” 늘 이런 식이다. 새벽 2시, 3시면 일어나 명상과 요가를 하고 집을 나서 대학부터 문화 센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살인적인 강도의 강의 스케줄을 소화하고도 기운이 펄펄 넘치는 이 여인, 요가 구루 원정혜 박사를 내가 어찌 따라잡을 수 있으랴. 새벽에 일어나기는커녕 차라리 밤을 새울지언정 늦잠을 택하고, 각종 인스턴트 식품과 스트레스로 찌든 에디터가 말이다. 때마침 고맙게도(!) 몰려든 촬영 일정을 핑계삼아 몇 차례 그녀의 요가 클래스 체험 권유를 미꾸라지처럼 피해다녔던 나는 결국 인터뷰 자리에서 야단부터 맞아야 했다. “지금 인터뷰할 때가 아니네요. 이 기자님, 빨리 병원에 가서 아미노산 주사부터 맞으세요. 그리고 제발 운동하시구요!”
나이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긴 하지만, 30대 후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간 피부에 반짝이는 눈동자, 볼우물이 귀엽게 파이는 웃음이 인상적인 그녀. 원정혜 박사의 기분 좋은 잔소리(?)는 지난해부터 온 국민을 사로잡았다. 놀라울 만큼 유연한 몸놀림에 해박한 지식, 게다가 개그맨들까지 웃기는 유머 감각을 갖춘, 귀여운 동자승(?) 같은 여자. 그녀를 통해 사람들은 요가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인도의 도인들이나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아크로바트!-를 떨치고 집 가까운 요가 센터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이제 요가는 전국민적인 ‘생활 체육’의 경지에 올랐다. 특히나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트렌드가 역수입되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요가가 트렌드세터임을 증명하는 고급스런 취향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요가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수행 방법이자 철학, 윤리, 종교 체계가 아니던가. 물질과 육체에 구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아를 만나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의식을 집중하는 고행. 우린 어쩌면 요가 중 일부분, 체위와 호흡 조절만을 뚝 떼서 다이어트와 몸매 가꾸기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요가 입문자라면 당연히 닦아야 할 도덕적 소양이나 심리적 수행인 명상은 어렵다고 외면하면서 말이다.
“요가가 중산층이나 상류층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인식은 미국에서 역수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너무나 잘못된 발상이에요. 무엇보다 요가는 젊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센터에 비싼 선생님 두고 배우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맑고 깨끗한 신선이 되는 양 생각한다면 안 배우느니만 못한 거예요.” 근계, 권계, 청정…. 요가 입문자들에게 요구되는 도덕률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그녀는 그저 소박하게 ‘우리가 유치원 때 배웠던 것들을 지키라’고 말한다. “남을 비방하지 않고, 남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하고, 또 잘됐을 땐 기뻐하는 마음을 닦는 것이 다른 모든 것들의 기본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욕심도 사라지고, 거짓말도 안 하게 되겠죠.” 원정혜 박사가 일상 생활에서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술, 담배 하지 말 것, 인스턴트 식품은 가능한 한 멀리할 것, 남녀 관계 문란하게 하지 말 것. | |
요가 입문자들은 대개 남들보다 자세를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는 ‘동작의 완성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아무리 자세를 잘해도, 몸을 풀고 나서 지저분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그래도 굳이 요가 수행의 진도를 논한다면 그 열쇠는 근기(根機)라고 말한다. 근기는 개개인이 지닌 종교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뜻하는 말로 그 높고 낮음에 따라 상, 중, 하로 나누며 다른 말로 하자면 타고난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가는 바이올린 배우는 것과 똑같아요. 세 살부터 배워도 더딘 사람이 있는 반면, 성인이 되어서야 시작했지만 잘하는 사람도 있죠. 수행은 마음 자세고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이 생에 넘어설 수 없는 선이 있더라구요.”
‘어떤 사람이 요가를 잘하나요?’라는 우문에 그녀는 순수하고, 맑고,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답한다. 반면 매사 부정적이거나 의심이 많고, 오만하고, 시기심이 강하며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고. 오랫동안 명상과 수행을 하면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성격과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명현 현상-머릿속이 맑아지다 못해 다른 사람의 뱃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감각이 명징해지는 것-과 기 체험을 겪은 후부터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상대의 성격이나 생각이 그림처럼 와 닿는다고 한다. “요가를 하게 되면 소리가 잘 들리고, 냄새도 잘 맡고, 제가 가르치는 한 학생은 공부가 너무 잘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요. 사람이 맑아지면 오는 현상이죠.” | |
그뿐인가. 얼굴은 더 앳되어지고 환해지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활짝 열 수 있게 된다고.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터놓다 보니 당돌하네, 독설가네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늘 자기를 스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애쓴다. 처음 만난 기자의 건강 상태를 꿰뚫고 금해야 할 음식과 지켜야 할 생활 습관을 조목조목 메모해주는 정성.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사람됨이나 생활 습관이 눈에 보이는 게 괴로웠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차라리 그 사람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좋은 방법을 추천해줘요. 물론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하고, 조용한 데 불러서 이야기하죠.” 언뜻 들으면 점쟁이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 경험이 쌓이면 일반인들도 남들의 됨됨이가 대충 보이지 않냐고 반문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방의 그것을 느꼈을 때 얼마나 맑게 비춰주느냐일 것이다. 투명한 잔에 담긴 물처럼, 해맑은 거울처럼 명징하게 입문자의 장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이미 마음을 비운 지도자의 길일 것이라고. 사실 요가의 최종 목적지는 삼매의 경지다. 이미 기 체험을 한 그녀로서는 일반 수행자들도 그런 현상을 겪어야 진정한 단계에 올랐다고 생각할까? 원정혜 박사는 삼매에 들어가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깊어지는 것 같아 싫다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거의 해탈과 비슷한, 생각의 씨앗조차 없어진 그런 상태로 가는 것이 사실상 요가의 목표인 것이다. “물론 목표로 한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개인차가 심해요. 가끔은 아무리 봐도 아닌데 ‘선생님처럼 느껴요’라고 말하는 ‘상상임신’(?) 케이스도 만나죠. 꼭 기 체험을 해야겠다, 삼매에 들어야겠다 의식하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부담 없이 하다 보면 자기의 근기에 맞게끔 그 길이 갈라지게 된답니다.”
건강을 위해 부담 없이 시작하라, 현생에 허락된 근기만큼 노력하라. 일각에서는 엄격하게 요구하는 채식에 대해서도 배움을 청하러 온 상좌가 너무 마른 것을 보고 1년간 해장국집으로 아르바이트 보낸 큰 스님의 이야기를 인용할 만큼 유연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 그래서인지 다이어트 또는 미용 목적으로 요가가 이용되는데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27kg 감량이라는 획기적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아닌가. 체중 78kg, 허리 사이즈 33, 허벅지 둘레 26인치. 리듬 체조 선수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체격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무엇보다 무대에서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는 일념으로 각종 다이어트법을 섭렵했었다. 요요 현상으로 건강까지 해칠 무렵 만난 요가로 인해 날씬한 몸매와 해맑은 얼굴, 그리고 명성까지 거머쥔 지금도 그녀는 체중계 앞에서 눈금 하나 움직일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울까? |
끊임없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념을 끊는 명상. 특히 그녀는 ‘이 뭣고’라는 화두를 놓고 좌선하는 간화선(看話禪)과 숨을들고 내쉬면서 수를 세는 수식관(數息觀) 같은 수행 방법을 즐겨 한다고 한다. 특히나 복식 호흡은 그녀가 강조하는 요가의 핵심. 폐로만 호흡을 하다 보면 어깨가 올라가게 되고, 자연히 통증이 올 수 있는 문을 열어두는 셈이라고. 그러니 복식 호흡으로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해야 몸이 깨어나게 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흉식 호흡만을 할 경우 생리 불순, 생리통 같은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또 두통, 위장 장애, 부종, 어지럼증, 목결림 등의 증상도 잦다고 한다. 요가는 폐 호흡보다 깊게 산소를 들이마시는 유산소 운동으로 이런 증상들을 완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이런 요가의 치유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그녀는 새로운 힐링 요가 저서를 준비 중이다. 인도에서 유래한 요가의 몸체에 해당하는 아유르베다 건강법에 우리 한방의 고전인 <동의보감>, 여기에 그녀의 전공인 서양의 체육학 등 동·서양의 양생법을 종합한 야심작. 주로 육체적 단련과 호흡에 집중하는 하타 요가를 소개하면서 여기에 직접 고안하거나 온갖 자료를 뒤져서 만들어낸 응용 자세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듯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그녀는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것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던가. 부드러운 미소를 띤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실 어떤 법보다도, 어떤 물리력보다도 간단하고 확실하다. 행복하게, 그러나 또한 진지하게 살아가라는 것. “욕심을 부리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달라요. 실천이 정말 중요하죠. 본능을 자제하는 게 곧 수행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