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어트 2009. 4. 25. 20:51

 

 

하얀 지방이 점점이 박혀 있는 꽃등심, 가장자리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 육즙이 그득한 티본 스테이크….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생각나는 갖가지 고기 요리들. 그러나 ‘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은 ‘눈 달린 건 하나도 안 먹어’라며 도도하게 샐러드를 주문하는 채식주의자들 앞에서 쑥 들어가게 마련. 작년 초 한 TV 프로그램이 자연식 밥상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래 채식, 나아가 생식으로 이어지는 ‘남의 살 반대운동’은 그만큼 기세등등했었다. 하긴 나 역시 제레미 리프킨의 좰육식의 종말좱을 읽고 한동안 고깃집에는 발길을 뚝 끊었다. 그 책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도살장의 광경이라니. 거대한 트레일러 트럭에 빼곡히 실린 소들이 물 한 모금 못 먹고 며칠 동안 고속도로 여행을 강요당하는 바람에 도착하기도 전에 골반이 깨지고 등이 부러지는 사례가 속출한다는 이야기며, 공기총을 맞고 기절한 소의 목을 벨 때는 피가 용솟음치며 터져나와 온 사방이 피 철갑이 된다는 식의 묘사 말이다.


게다가 대량 생산되는 고기에는 근육과 지방 조직이 더 빨리 붙게 하는 성장 촉진 호르몬과 밝은 색깔이 나게 하는 사료 첨가물 등이 대량 투여되며 무엇보다 도살될 때 동물이 느낀 분노와 원한이 스며든 저질 단백질이라는 채식주의자들의 말에는 저절로 식욕이 떨어질 지경이다. 육식 습관은 ‘풍요의 병’이라는 암, 심장병, 당뇨병 같은 질병을 유발하고 나아가 환경 오염과 기아 사태를 야기하는 데다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지배 체제의 연장선상이라는 에코 페미니즘적 시각은 또 어떤가.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채식이냐 육식이냐 식의 양분법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식습관 모두 장점이 있으며 문제는 각 영양소를 어떻게 골고루 먹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한의학 전문의인 류갑순 과장(자생한방병원 비만센터)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신체 구성 성분을 지니며, 또 가장 다양한 신체활동을 하는 생명체입니다. 이러한 인체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죠.”


육식은 순발력, 근력을 높여주고 단백질, 칼슘, 철분 등의 영양소를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육류는 철분, 칼슘과 함께 인체 조직을 구성하는 필수 아미노산의 보고. 그러나 콜레스테롤과 지방 함유량이 높아서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에는 동맥경화,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암 등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 섬유질이 부족해져서 변비에 걸리거나 노폐물이 체내에 쌓여 피부가 나빠지는 단점도 있다.


채식이 몸에 좋은 이유는 채소에 들어 있는 섬유질 때문이다. 섬유질은 대장까지 내려가 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변비나 대장암 등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혈중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떨어뜨림으로써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혈당치의 과도한 상승을 막아주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그러나 채식에는 함정이 있다. 가정의학 전문의 정현주 원장(드림 클리닉)은 완전 단백질인 고기를 멀리할 경우, 특히 다이어트를 할 때라면 근육 손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식물성 단백질인 콩, 대두, 견과류 등으로 부족분을 충당할 수도 있지만 체내 이용율은 동물성 단백질이 더 체내 이용률이 높다는 것. 또 육류에는 헤로글로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결핍되었을 경우 빈혈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자생한방병원의 류갑순 과장 역시 채식의 한계를 우려한다. 순수하게 식물성 식품만 섭취할 경우 동물성 식품에만 들어 있는 비타민 B12가 결핍되는데, 이는 철분의 섭취율을 낮게 해 빈혈을 유발시킨다고. 게다가 우리나라 식생활의 특성상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사람이라도 칼슘 섭취량이 하루 권장량의 3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채식만 고집한다면 칼슘 섭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어 골다공증이 생길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최근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육류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기능을 낮춰 성기능 감소와 근육 상실, 적혈구 감소 및 골밀도 저하 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육식과 채식의 상호 보완. 육식이라고 하면 보통 피가 뚝뚝 흐르는 이미지만 떠올리기 쉽지만,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레드 미트를 제외하고라도 닭, 오리 같은 가금류, 우유 등 유제품, 달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생선 역시 우수한 단백질원이라는 걸 명심할 것. 물론 햄, 베이컨 같은 가공 육류는 칼로리가 높고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현주 원장에 따르면 하루 한 끼는 육류, 유제품, 생선 같은 것으로 단백질을 섭취해줘야 한다. 대신 육류를 먹을 때는 부위와 조리 방법에 신경쓰는 것이 좋다. 우선 어떤 종류의 고기든 지방이 적은 부위를 선택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로스보다 등심이나 넓적다리를, 닭고기는 다리보다는 가슴살을, 쇠고기는 허벅지살과 정강이살을 선택하는 게 좋다. 조리 방법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돼지고기는 한 번 데쳐서 조리하고, 닭도 껍질을 벗겨 먹으면 칼로리를 낮출 수 있다. 고기를 푹 끓인 다음 식혀서 기름기를 걷어낸 뒤 국물을 이용해도 좋다. 또 튀기고 조리는 것보다는 샤브샤브, 구이, 장조림, 찜 등의 방법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부족한 지방은 올리브 오일, 참기름, 콩기름 같은 필수지방산에서 보충한다. 스낵류, 라면 등을 튀길 때 쓰이는 팜유 같은 불필수지방산 종류는 피해야 한다.


육식과 채식은 이제 식습관의 차원을 넘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을 대표하는 또 다른 기준과 상징이 되었다. 육식을 하는 이들은 입 속에서 질컹하고 씹히는 식감을 위해 생명체들의 무차별 살상을 외면하는 냉혈한으로, 반면 채식주의자들은 그깟 식성의 변화 하나로 지구의 변혁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것. 그러나 뭐든 중용이 좋은 게 아닐까. 우리의 몸이 육류와 곡류, 채소류를 골고루 원하듯이 말이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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