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남녀 2009. 10. 1. 17:09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의 날' 기념 온라인 공모 이벤트에서 'WBC가 맺어준 농부총각 KIA 팬과 도시처녀 롯데 팬의 사랑 이야기'가 1등작에 선정됐다.

KBO는 야구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야구의 날'을 맞아 지난 8월 19일부터 31일까지 '야구로 맺어진 우리 사랑'이라는 주제의 온라인 이벤트 공모에서 주영숙씨의 'WBC가 맺어준 농부총각 KIA 팬과 도시처녀 롯데 팬의 사랑 이야기'가 1등에 선정됐다고 9일 밝혔다.

이 작품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열렬한 롯데 팬인 주인공이 낯선 도시로 전근을 가게 돼 WBC와 관련된 블로그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던 중 블로그 댓글을 통해 친숙해진 KIA팬인 시골 농부 총각과 야구장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이다.

1등상에게는 상품으로 스마트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제주도 2박 3일 여행권과 메리얼 웨딩에서 제공하는 웨딩촬영권 및 앨범이 수여된다.

KBO는 이 기간에 홈페이지를 통해 감동적인 사연을 공모한 결과, 총 59편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이 가운데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WBC가 맺어준 농부총각 KIA 팬과 도시처녀 롯데 팬의 사랑 이야기' 등 15편의 입상작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야구의날 기념' 온라인 이벤트 공모 1등상 수상작 전문
WBC가 맺어 준 농부총각 기아팬과 도시처녀 롯데팬의 사랑이야기
- 주영숙(sorakmt)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다.

2008년 8년만의 가을야구, 그러나 3연패로 처참히 가을전설의 꿈은 그저 물거품이 되고, 그 이후찾아온 공허함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다른 팀의 가을야구를 관람하면서 나는 야구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야구만화를 찾아 읽으며 그 공허함을 달래고자 하였다.

그리고 기나긴 겨울… 프로야구가 개막하기 전, 야구팬들에게는 WBC라는 크나큰 선물이 있었다.

2009년 2월, 서울에 있던 직장이 갑자기 대전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오랜 생활을 해온 나에게 갑작스런 대전생활은 야구 없는 겨울생활을 더 외롭게 하였다.

그 외로운 겨울을 그나마 견디게 한 것은 블로그였다.

나의 취미 중 하나인, 피아노를 매일 밤 1곡씩 레코딩 하며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블로그 친구들을 알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낯설기만 한 대전생활을 적응하게 되었다.

2009년 3월 드디어 WBC가 시작되었다.

대만전에서 통쾌하게 이겼으나, 그 다음 일본전에서 콜드패를 당하였다. 그 처참한 기분을 나는 피아노에 옮겨서 레코딩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처음 레코딩한 곡은 애국가였다.

그 다음부터, 경기가 하나씩 있을 때마다, 그 경기에 맞게 피아노치고 노래하며 레코딩을 하였고, 여러 번 베스트 동영상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애국가를 레코딩하기도 하였고, 독도는 우리땅을 경기 내용에 맞게 개사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댓글이 하나 달렸다. 닉네임은 ‘감자농사 10년째’이고, 댓글의 내용은 '우리 사귑시다'였다. 포스팅을 보고 좋았다거나, 감동적이었다는 댓글을 받은 적은 있지만, '우리 사귑시다.'라는 거침없는 내용의 댓글은 처음이었고, 게다가 '감자농사 10년째'라면 직업이 농부라는 이야기인데, 나름 골드미스라고 자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댓글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닉네임 '감자농사 10년째'의 댓글은 계속 이어졌고, 처음의 황당한 댓글과는 달리, 점점 댓글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사회의 선입견이 제공한 농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댓글을 주고 받으면서, 내가 롯데 팬인 것을 알고, 약간 실망하더니, 자신이 정말 농부이며, 기아팬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야구계에서는 이미 오래돈안 엘롯기 동맹이라고 하여 오랫동안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을 바라보는 팬들끼리의 안타까운 마음이 형성되어, 괜히 동지 의식도 느껴지고, 나의 포스팅에 댓글이 안달리면, 조금씩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댓글을 통해, 서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메신저 주소를 공개한 후 서로 메신저를 하면서, 감자농사를 하는 그 농부는 전북 장수에 살고 있고,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서로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9년 5월 13일. 대전에서 기아-한화전이 있었다.

우리는 그 경기를 통해 처음 만났다. 2009년 5월 내가 응원하는 롯데의 성적은 참으로 처참했고, 기아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대전구장에, 농부총각은 장수에서 트럭을 몰고 와 야구장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대전구장으로 이동했다.

대전구장으로 가면서,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여기 가도 되는 건가?’, ‘블로그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도 되는건가?’, '진짜 이상한 농부아저씨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등의 숱한 고민을 하는 중 택시는 대전구장에 도착했고, 이미 피아노를 통해 나의 모습을 알고 있는 농부총각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남자를 볼 때, 항상 외모를 중시하는 못된 습관이 있는 나에게, 농부총각은, 정말 농부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생겼고, 마치 오래전 알아온 것 처럼, 대전 구장에서의 첫 만남이 싫지 않았다.

그 후로, 우리에게는 야구 뿐 아니라, 너무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 다 등산을 좋아하고, 먹는 식성도 비슷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왼손잡이이며, 만남을 거듭할수록 서로의 닮은 점을 발견해 가는 것이 신기하면서 또한 행복했다.

농부총각은 대전구장말고 가 본 야구장이 없었다. 서울에서 오래 산 나는 그에게 잠실구장을 소개하고, 목동구장을 소개하고, 야구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사직구장까지 함께 했다.

그리고, 정말로 농사를 짓는 그의 농사가 바쁠 때는 그의 밭으로 가서, 감자도 함께 캐며 농사를 도왔다.

절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거라고 결심한 나는, 농부총각에게서, 도시 사람과는 다른 인생의 높은 가치와 철학을 보게 되었고, 이 사람이면, 좋아하는 야구를 평생 함께 보며, 존경하며,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WBC가 인연이 된 농부총각과, 도시처녀는 12월에 결혼을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죽어도 결혼 안한다는 내가 갑작스럽게 농부총각과, 게다가 기아팬과 결혼한다고 하니, 가까운 지인들은 믿지 않더니, 이제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알고 맘껏 축하해준다.

오래 롯데야구를 같이 본 친한 사람들은 이 결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는 농부총각의 '기아팬 포기각서'와, '롯데팬 전향서'를 받지 않으면 이 결혼은 무효라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애는 무조건 엘지팬을 시키라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엘롯기 동맹의 아름다운 실천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기아는 가을야구를 거의 확정했고, 롯데는 피말리는 4위 싸움을 하는 요즈음, 그는 일부러 더 롯데 경기를 응원해주며, 오늘은 꼭 이기라고 응원해준다.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꼭 롯데팬 만들자면서, 격려해준다.

지난해 사직구장에서 어떤 꼬마팬의 등에 있던 응원문구가 생각난다. '아빠는 기아팬, 엄마는 롯데팬 가을야구 함께해요.'
지난해 롯데는 가을야구를 했고 기아는 하지 못했다. 올해 기아는 가을야구를 할 것 같고, 롯데는 아직 그 결과가 불투명하다.

WBC가 인연이 되어, 야구가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내 평생의 반려자.

나는 농부의 아내로 살 것이고, 그와 함께 캐치볼을 할 것이고, 같이 야구를 보며 서로의 팀을 응원해주며, 그렇게 살 것이다.

요즘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아기를 낳아서, 함께 대전과 광주와 잠실과 사직과 목동의 야구장을 누빌 생각을 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야구 때문에 너무 늦게 발견한 우리의 사랑이, 야구 보다 더 많은 일상의 공유로 오래 행복하기를 그렇게 바래본다.

posted by 포크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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