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꿔놓은 여행지 20 | ||
중세의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이자 여류 평론가인 풀러는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2007년 7월, <럭셔리> 여행 특집에 등장한 20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여행은 나 자신과 인생을 바꿔놓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시공時空”이라고. 그들이 만나고 온 여행지가 왜 특별한지,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던 가슴 벅찬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풀어놓았다. | ||
사진은 여행작가 김영주가 찍은 토스카나. 히바는 두 개의 성곽으로 이루어졌는데 디샨칼라라는 외벽이 있고, 그 안에 이찬칼라라는 내성이 있다. 한적한 이찬칼라의 성벽을 따라 서서히 걸으며 분주한 일상을 잊곤 했다고. 더욱이 밤이 되면 미나레트마다 아름다운 조명으로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 된다. KHIBA 1.화가 강소영 여성의 욕망을 버리고 찬란한 자연의 색을 그리게 된 히바 “초창기에는 구두나 주얼리, 백과 같은 액세서리를 오브제로 사용해 여성의 욕망을 작품에 담았어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후에는 자연의 에너지를 화폭에 담고 있죠. 여행길에서 알게 된 고려인 화가가 적극 추천해 떠난 곳인데 처음 발을 딛는데도 본향本鄕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녀의 예술혼을 뒤흔든 곳은 우즈베키스탄 서남부에 위치한 히바. 히바는 오아시스에 지은 성곽 도시로 유적 50여 곳과 250여채의 집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머무른 2주 동안 그녀에게 큰 감명을 준 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색감이다. “건조한 모래땅 위에 흙으로 지은 도시인지라 주위가 온통 흙빛이에요. 그래서인지 패브릭, 목공예품 등은 컬러가 매우 찬란해요. 강렬한 원색으로 척박한 삶을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듯이 말이죠. 이곳에서 구입한 스카프를 스튜디오 한 벽에 휘장처럼 걸어두었는데 볼 때마다 강렬한 색채가 제게 영감을 줘요.” 그 후 그녀는 작품에 찬란한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에너지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추억은 사막에서 보낸 시간이에요. 히바는 ‘검은 모래’라는 의미의 카라쿰 사막과 ‘붉은 모래’라는 키질쿰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사막 한가운데에 천막 형태로 지은 이동식 가옥 율타yarta에서 3일 정도 머물렀죠. 사막에 밤이 찾아오자 무수한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마치 별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자연이 내뿜는 뜨거운 에너지가 제 온몸으로 흡수되는 느낌.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요. 이 여행을 통해 자연만큼 아름답고 경건한 예술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스스로 자연주의 작가라고 칭하는 강소영. 그녀는 오늘도 풍경화를 그린다. 자연과 더불어 내면의 풍경화를. MILANO 2 치오앤파트너스 김치호 대표 사람이 인테리어에 우선해야 한다는 깨달음, 밀라노 치호앤파트너스의 대표이자 대학교수로 종횡무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치호 대표. 그에게 밀라노가 특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실내 건축을 전공한 그가 유학을 결심했을 무렵, 밀라노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불모지로 불렸을 만큼 인지도가 낮은 도시였다. 하지만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가구 분야의 디자인으로 꽤나 유명한 도시가 밀라노라는 사실에 주저 없이 유학을 떠났다. 그가 말하는 밀라노의 매력은‘무브먼트’란다. 디자인, 패션, 아트 등과 관련된 행사와 전시가 365일 끊이지 않고, 계절별로 볼거리가 풍성하며, 사람들의 움직임 자체가 예술의 한 분야로 다가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두오모 성당이 상징하는것은 비단 놀라운 건축 기술과 조형미만은 아닙니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완성도 높게 지으려 했던 그들의 책임감이야말로 밀라노 디자인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죠. 특히 산업적으로 밀라노 디자인은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마감재, 조명, 동선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선택하죠. 거기다 유머러스한 멋까지 있어요. 마치 놀이를 하듯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이탈리아인의 방식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디자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몰랐을 테니까요.” 멋있는 겉모양, 다소 심각한 형태 등 어린 시절 그가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모두 밀라노를 통해 깨지고 다듬어졌다. 심각한 것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디자인, 그리고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 존재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밀라노에서 깨달은 것이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만든 공간에 머무르게 될 사람을 상상하며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사람들의 삶 자체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사람 사이의 조화를 꾀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 그가 지금 하는 일이자 밀라노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1 패션을 이야기하고 공간의 미학을 토론하며 술을 즐기던 단골 바는 지금도 밀라노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 조나 브레라Zona Brera에서 비아 가리발디Via Garibaldi를 연결하는 동네풍경은 김 대표가 밀라노에서 특히 좋아하는 지역 중 하나라고. 유럽의 귀족과 부호들이 즐겨 찾는다는 그란 바이아 델 두케 리조트는 스페인이라고는 하나 모로코에 더 가까워 이슬람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크루즈를 타고 그 근처 바다로 조금만 나가면 돌고래도 쉽게 볼 수 있다. 리조트에서는 저녁마다 흥겨운 파티가 열린다. TENERIFE 3 김현주갤러리 김현주 관장 알아보는 이 하나 없는 테너리프의 완전한 자유와 호사 “엄마, 저 돌고래 좀 봐. 돌고래가 같이 헤엄치고 있어.” 딸아이의 격앙된 목소리에서 김현주갤러리의 관장 김현주는 달콤한 행복을 맛봤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는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진 카나리아 제도에서 유럽의 부호가 많이 찾는 다른 고급 휴양지인 테너리프로 향했어요. 그곳의 그란 바이아 델 두케 리조트Gran Bahia Del Duque Resort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죠. 낮에는 골프를 즐기거나 크루즈를 타고, 주변의 화산 지대를 관광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저녁에는 갈라 디너와 가면 무도회에 참석했고요.” 그곳에서는 길을 걷다 한국인과 어깨를 부딪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남들이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곳’이라는 수식어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던 것. “남편과 아이, 우리 가족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어요. 한국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어서 그랬을까요? 유독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서로 하나가 된 것 같아요. 럭셔리한 삶? 경제적인 요건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 두 요소가 더 가치 있는 거 아닐까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삶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게 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여행. 그래서 그녀는 때로 삶이 고단할 때 가족과 함께 여행 갈 것을 권한다. 그곳에서 찾은 행복이란 단어가 당신의 삶을 180도 변화시킬 것이라고. 여행을 떠나는 계기도 가지각색.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권기왕에게 한 편의 소설이 안내한 타리파 여정은 더욱 특별하고 신선한 자극이 된 듯하다. TARIFA 4 여행 칼럼니스트 권기왕 처음으로 한 편의 소설처럼 이어진 여행, 타리파 그에게 여행은 전부다. 아니, 조금 더 살을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업業이자 삶이다. 십수 년 동안 여행 칼럼니스트로 세계 5대륙을 여행한 발 넓은 그는 “그저 가고 싶은 곳을 두루 다녔을 뿐”이라고 단조롭게 답한다. 여행을 지적 호기심의 발로發露라고 정의하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낯선 곳은 미지의 신세계가 아닐까. 다양한 곳을 찾아다니는 그이지만 언젠가 가슴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을 주체하지 못하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을 충만하게 해준 여행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조그만 항구 마을 타리파다. 타리파는 스페인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하고 있다. 언덕 위에 서면 바다 건너 아프리카 대륙이 수평선 앞으로 보이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색 마을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차를 렌트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두 달 동안 여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안달루시아의 해안을 따라 여행하다가 타리파에 들렀죠. 주인공 산티아고가 꿈을 좇아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나갔듯 저 역시 자성磁性에 이끌린 것처럼 타리파를 거쳐 모로코로 그리고 이집트까지 건너갔습니다. 아마 작가 코엘류도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겠죠.”파울로 코엘류와 <연금술사>와 산티아고의 여정. 타리파는 한 여행 칼럼니스트에게 문학적인 상상력과 여행 칼럼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성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후로 그의 글이 훨씬 더 탄탄한 깊이를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여행이 운명이 되어버린 그의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를 몰라보게 성숙시켜준 타리파는 백색의 마을, 광활한 대지, 눈부신 스페인의 태양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준 곳이다. SICILIA 5 와인 칼럼니스트 김혁 와인과 대화한 짜릿한 경험, 시칠리아 와인 종주국에서 예술을 공부하던 그는 자연스레 와인과 접하게 되었고, 외딴와이너리를 시작으로 오직 와인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올랐다. 오래된 와인일수록 부드럽고 풍요로운 맛을 내듯 와인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도 와인과 함께 성장하는 듯했다.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마신 후 와인이 탄생한 지역을 지질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근거해 그만의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몇 달 전 찾은 시칠리아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지, 삶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원고를 어느 정도 마감한후 마지막으로 디저트 와인을 정리하기 위해 시칠리아 섬을 찾았죠. 당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 포도 품종인 무스카데Muscadet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서 그동안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특히 옛날 아랍인들이 모여 살았던 ‘다모아’에 며칠 묵으며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왔어요.” 오래된 빈티지 와인일수록 더욱 품위 있고 진한 풍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와인을 따라 떠난 여행도 스스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그에게 자신과 대화하는 뜻 깊은 시간을 선물했다. VENEZIA 6 글래스 월드 황병운 이사 무라노 글라스를 만나 인생의 제2막이 열린 베네치아 글래스 월드의 황병운 이사는 다소 이단아적인(?) 행정학도였던 것 같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남들이 뭐라든 자신만의 미적 감각에 사로잡혀 평범하지 않은 패션도 무난히 소화해내고, 게다가 알록달록한 색감과 잘록한 디자인을 유독 좋아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첫 직장으로 선택한 건설 회사가 IMF의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여행 책자를 가이드 삼아 베네치아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일정을 잡았죠.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초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0일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두오모 성당도 버킹엄 궁전도 아닌 화려한 빛깔을 뽐내던 베네치아의 무라노 글라스였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 고민에 빠졌죠. 무라노 글라스에 인생을 걸어도 될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2002년 2월 무라노 글라스만 전문으로 수입 판매하는 글래스 월드를 시작했습니다. 무라노 글라스를 안 이후로 10여 차례 더 베네치아에 다녀왔고, 6년 동안 베네치아와 무라노 글라스를 공부하고 연구했죠.” 20일의 배낭여행 기간 중 단 하루 머문 베네치아.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다.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무라노 글라스의 매력에 빠져버린 그. 진정 베네치아 전문가이자 무라노 글라스의 한국판 아버지가 된 것이다. 원시적이면서도 그 지역 고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프리카의 매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의 작품과 정신세계에 더없이 매혹적인 세계로 다가왔다. SOUTH AFRICA 7.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 아프리카의 색채가 디자인에 들어오다, 남아프리카 가장 힘들 때 여행을 생각하고 가슴 아플 때 여행을 계획하며 인생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 여행을 한다는 리빙액시스 대표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 “여행은 저를 바꾸는 또 다른 체험입니다. 여행을 통해 얻은 드라마틱한 체험은 제가 맡은 프로젝트에 어떤 형태로든 표현됩니다.”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모로코, 스위스, 터키,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호주, 이집트 등 영감을 자극하는 곳이면 어디든 떠난 그에게 일대 전환점을 가져다준 여행지는 2004년에 일주일간 여행한 남아프리카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 아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하라 사막과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 강이 흐르는 땅. “지인중에 아프리카에서 7년을 산 여행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를 앞세워 여행을 즐기는 네 명이 동행했죠.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지배해온 유럽 백인들의 우월주의 잔재와 빈곤, 질병, 자연재해로 인해 잊혀진 대륙으로 전락한 비극의 땅, 그리고 그 안에 혼재된 다양한 문화와 장엄한 자연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출발했어요.” 대자연의 품속에서 그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250여 년 동안 1400만 명의 노예가 북미와 남미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린 슬픈 치욕의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지만 옷과 스타일, 종교의식 등 이곳의 문화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것은 사실이나 문명의 출발점인 동시에 피카소와 스필버그 등 수많은 창작인과 예술인에게 영감을 준 은혜의 땅. 최시영 역시 그곳에서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대륙이 전하는 힘과 메시지를 느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이것저것 모은 것이 어느덧 규모를 갖춘 컬렉션이 되어 그의 디자인에 중요한 모티브이자 요소로 자리 잡은 덕에 디자이너로서의 아이덴티티에도 적잖은 변화가 온 게 사실. 결국 그에게 아프리카는 신선하고도 생경한 영감의 땅이 돼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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