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창고
2009. 7. 23. 00:41
알렉산드로스, 클레오파트라, 칭기즈 칸, 마르코 폴로, 마담 퐁파두르 그리고 나폴레옹! 그 자체로 위대한 역사이자 신화인 이들의 감춰진 본색을 공개한다. 아, 그들이 이럴 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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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최근 도서출판 이지북에서 나온 <영웅본색>의 내용을 발췌, 편집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에디터가 창작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는 출판사 측도 마찬가지다. 여기 소개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모두 독일의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에 실린 것이다. <디 차이트> 편집부는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웅 중 우리가 특히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을 엄선해 간추렸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하여금 그들의 ‘본색’에 관해 연재토록 했다. 사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영웅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의 탄생과 멸망에 관해 차근차근 들려주듯 재미있고 흥미롭다. 바늘처럼 치밀한 독일인이 서술한 내용이므로 왠지 모를 신뢰감도 생긴다. 2000년 역사를 뒤집는 새로운 진실, 칭기즈 칸부터 시작한다. 중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을 통합하고 태평양 연안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땅을 장악한 칭기즈 칸은 동양 역사의 자존심이요, 몽골 최고의 영웅이다. 종족 번식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에게도 칭키즈 칸은 최고의 롤모델이다. 그는 정복한 땅의 여성들을 차례로 임신시키며 엄청난 수의 후손을 남겼다. 지금도 중국 허난 성 유역의 5개 마을에 그의 후손 1만500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하니 그의 정복욕은 생물학적으로도 유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소심한 겁쟁이였다는 주장이 재미있다. 책 속 문장을 옮기면 이렇다. “칭기즈 칸을 이례적인 지배자로 만든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개를 두려워했고,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도 어머니가 야단치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전쟁 중에 그가 보인 영웅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안전한 곳에서 군대를 지휘했고 마음껏 기개를 펼친 것은 사냥할 때뿐이었다.” 심지어 “초원에서 목숨을 오래 보존하고 싶다면 칭기즈 칸의 처세술을 따라 하면 된다”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의 남성답지 못한 전력 때문인데, 칭기즈 칸은 어느 날 아침 도적 떼의 기습을 받자 갓 결혼한 아내를 나 몰라라 하고 혼자만 말을 타고 줄행랑을 쳤다(그의 연대기는 아내를 태울 말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로 아내까지 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높이 살 만하다. 20여 년 동안 몽골 제국을 지배하면서 그는 몽골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변모시켰다. 우편 제도와 조세 세도를 도입했고, 주민들로 하여금 숲을 개간해 떠돌이 생활을 접고 정착 생활을 하도록 했다. 성과주의를 도입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었다. 급진주의적 개혁가였던 영웅, 자신의 몸을 조금만 덜 챙겼어도 오늘날 이런 치욕스러운 ‘본색’으로 회자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안타깝다.
마르코 폴로, 그는 정말 중국에 갔을까? 책은 마르코 폴로의 진실성을 강하게 의심한다. “타고난 구라꾼, 마르코 폴로.” 대놓고 비아냥거려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한 제목에서 보듯 독일의 역사가들은 마르코 폴로의 모든 족적에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마르코 폴로 가문 최고의 영광이자 시대의 베스트셀러인 <동방견문록>이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라 는 주장이다. 마르코 폴로는 17세 때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원나라 대도(大都 : 지금의 베이징)에 갔다. 그곳에서 황제 쿠빌라이 칸의 특사로 약 17년간 중국 대륙 구석구석을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동방견문록>을 완성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3년 동안 중국의 한 지방 도시를 다스렸다고 자랑했지만, 중국어 학자와 몽골어 학자들은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사료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 그는 자신이 투석기를 개발해 쿠빌라이 칸이 샹양襄陽을 정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도시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가기 전 이미 2년 전에 정복되었다. <동방견문록>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만리장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완성한 곳은 제노바의 감옥이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발발한 무역 전쟁 때 포로로 잡혀 투옥된 그는 감옥에서 만난 루스티켈로Rustichello라는 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 적게 한다. 이미 소설 한 편을 쓴 경험이 있는 루스티켈로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에 극적 양념을 첨가했다. 천국과 같은 정원을 꾸며놓고 젊은이들을 유인해 열락을 맛보게 한 후 목숨을 빼앗는 ‘산상의 노인’이나 자기를 찾아온 친구에게 아내를 사흘간 내주는 동양의 전통 등이 대표적이다. 마르코 폴로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적나라하다. 아, 그는 정말 중국에 갔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사기꾼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는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녀의 이름은 의약품이나 학술지가 아니라 마사지 오일이나 섹스 숍에서 파는 물건 등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는 문장에 웃음이 난다. 해외 출장길, 우연히 그의 이름을 발견한 경험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비디오 숍에 꽂힌 비디오 제목이 ‘아, 클레오파트라’였고 핀란드의 휴양지 난탈리Naantali에 있는 ‘난탈리 호텔 스파’의 스파 종류 중 하나가 ‘클레오파트라의 꿈’이었다. 당시 호텔의 홍보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콧대 높은 클레오파트라는 멀리 여행을 떠날 때마다 당나귀 400마리를 데리고 다녔어요. 바로 짠 당나귀 우유로 피부를 마사지하고 샤워를 했죠. ‘클레오파트라의 꿈’은 우리 호텔 최고의 스파 프로그램이에요. 샴페인을 마시며 우유와 꿀을 섞은 물로 샤워한 다음 마사지를 받죠.” 콧대 높은 왕녀, 로마 제국의 정력가인 안토니우스Antonius를 침대로 유인해 뒤에서 정사를 조종한 창녀 등은 클레오파트라의 전형적 이미지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가들은 그녀의 몸 대신 정신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학술 서적을 집필하고, 철학을 연구했으며, 탁월한 정치 감각을 지닌 영리한 전략가였다. 유대어, 아랍어, 시리아어, 메디아어, 파르티아어, 트로글로다이트어 등(무슨 언어인지도 잘 모르겠지만)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최고 여신인 이시스Isis로 경배하도록 했다. 로마의 장군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침대로 유혹한 것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집트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동시에 탁월한) 전략이었다. 악티온 전투에서 특히 그녀의 전략은 도드라진다. 옥타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맞붙은 해전. 전쟁에 패배한 그녀는 민심의 동요를 우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요란한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를 앞세워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했다. 결국 몸도 전략의 도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그녀는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여왕이었으므로 최소한 ‘정상 참작’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폴레옹, 나는 전쟁보다 예술을 사랑한다오 유럽을 취재하다 보면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십자군 전쟁만큼이나 자주 듣게 된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영국에도 그의 자취는 깊게 남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속한 도시 루카Lucca에서발견한 흔적. 1799년 이곳을 함락한 나폴레옹은 여동생에게 이 도시를 결혼 선물로 주었다. 한 나라의 도시를 선물한 오빠가 있었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전쟁과 결부되어 세상에 기억된다. 그가 침공한 나라, 그가 빼앗은 도시의 목록과 더불어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최고의 전성기를 안긴 영웅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사실은 전쟁광이 아닌 몽상가였으며,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유럽의 지도를 바꾼영웅은 특히 예술을 사랑했다. 젊은 시절에 소설과 수필을 쓰기도 했는데 그의 산문은 스탕달이 소개할 정도로 유려했다. 독서량 역시 놀라울 정도였다. 여행을 하거나 원정을 떠날 때 마차에 100권이 넘는 책을 가지고 다녔다. 특히 <성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했다. 그의 사서는 세계 곳곳에서 출간되는 신간을 모두 모아 그에게 보냈는데, 거기에는 러시아의 문학작품도 포함되었다. 나폴레옹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좋아하던 음악가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를 연봉 8만 프랑에 파리로 초빙했는가 하면, 1809년 프랑스군이 빈을 점령했을 때는 평소 존경해온 요제프 하이든이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집 앞에 보초까지 세워주었다. 그의 시녀였던 클레어 드 레뮤사의 증언이 흥미롭다. “그는 오시안(시인)을 좋아했고 은은한 조명과 저녁노을을 좋아했다. 이탈리아 가수들이 소수의 현악기에 맞춰 노래하는 부드럽고 우수 어린 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런 정적인 시간에 휴식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는 기분이 밝아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쩌면 나폴레옹은 예술의 순수한 기운을 수혈함으로써 전쟁 중에 행한 살육의 죄를 구원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다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폭군에 술주정뱅이였다 오래된 얘기다. 잠시 출판사에서 일할 때 옆 직원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인전을 편집하는 것을 보았다. 유치한 이야긴데,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보고 살상용 망치로도 쓸 수 있겠다며 키득거렸다.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위대한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 수백 페이지가 온통 그런 내용이었으니 그의 업적이 대단하긴 했나 보다. 마케도니아(발칸 반도의 중부, 즉 그리스·불가리아·마케도니아 3국에 걸친 지역)의 왕으로 동서양의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리스 문명과 헬레니즘 문화를 세계 곳곳에 꽃피운 그는 서양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페르시아와 이집트, 바빌론을 차례로 점령, 마침내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영토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접수’한 그는 ‘천재적 야전 지휘관’, ‘탁월한 전략가’라는 타이틀을 이미 고대 때부터 달고 다녔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앞모습’인데 그의 ‘뒷모습’은 자못 충격적이다. 책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업적이 그가 행한 무자비한 폭력의 결과물이라 꼬집는다. 왕은 무자비했다.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수천 명의 병사를 죽였고, 그의 군대에 항복하지 않는 토착민 역시 무참히 살해했다. 전체 군대의 4분의 3이 그의 처벌로 죽은 적도 있다. 이런 전제적인 통치 방식을 비판한 귀족 역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저세상으로 갔다. 죽마고우인 클레이토스는 그의 창에 찔려 죽었고, 아버지는 알렉산드로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살해되었다. 술에 탐닉한 왕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흉내 낸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거대한 제단을 만들고 여덟 마리 말을 매달아 끌게 한 후 그 위에서 일주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연酒宴을 즐겼다. 복종하면 살 것이요, 거부하면 죽을 것이니 그의 주변에는 그를 신처럼 떠받드는 신하만 득실거렸다. 생각해보면 그의 잔혹함은 시대의 필연적 산물인지도 모른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용맹함을 갖추도록 교육받았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던 시대. 그 당시 대부분의 군주 혹은 왕은 ‘인간미’란 언어를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 가여운 영혼이라 말하면 너무 동정적일까?
마담 퐁파두르, 사랑도 죄가 되나요?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미 같은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의 사랑은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그녀가 정실이 아닌 정부였기 때문이다. 2만2500리브로짜리 드레스를 입고, 547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걸었으며, 섹스에 능하지 않은 자신 대신 왕의 욕정을 충족시킬 창녀를 골라 왕에게 바친 일련의 행동은 그녀가 정실이 아닌 첩이었으므로 더욱 가혹한 비난을 받는다. 왕의 총애를 받은 그녀는 중국의 유일한 여제 측천무후 부럽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모든 각료에게 응징과 벌을 내렸으며, 수많은 안건과 상소문을 직접 검열하고 결재했다. 여기까지가 세상이 기억하는 퐁파두르라면 책은 그녀의 성실성을 높이 산다. 사랑받을 만했다는 것. 실제 그녀는 대단한 노력파였다. 죽을 때까지 하루에 6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이른 아침부터 사절, 예술가 등을 만나 국정과 예술을 논했다. 대대로 숙적 관계였던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개선에 힘쓰는가 하면, 콩코르드 광장을 만들어 파리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 데도 일조했다. 왕밖에 몰랐던 그녀의 인생은 차라리 가엾기까지 하다. 왕의 정부로 지낸 19년, 그는 아편 중독자처럼 왕과 권력에 인생을 저당 잡혀 살았다. 폐결핵과 심부전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육신에 하루도 빠짐없이 연지를 발랐으며 병치레를 끔찍이 싫어한 왕을 위해 죽는 그 순간까지 건강을 가장하고, 위트 있는 농담을 던졌다. 딸과 아버지를 먼저 저승에 보내는 아픔을 겪고도 슬픔을 지겨워하는 왕을 위해 인형처럼 웃었으니 이 정도면 집착을 넘어 병적 수준이다. 그가 지은 치명적 죄라면 루이 15세와 권력을 미치도록 사랑한 것이다, 라고 말해도 왠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사랑도 죄가 되나요?”
비스마르크, 철혈 수상은 신경쇠약증 환자였다 독일 제국의 수상을 지낸 그의 얼굴은 뾰족한 얼음 조각 같다. 양미간은 대개 잔뜩 찌푸리고 있고 부릅뜬 눈은 차갑고 냉정하다. 제복을 입고 떡하니 힘주고 서 있는 모습은 바늘 하나 들어갈 여유가 없고, 짧게 자른 머리(사실은 대머리에 가깝다)와 무성한 콧수염은 마초적 기질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를 ‘철혈 수상’이라 부르는 것도 이렇듯 딱딱하고 강인한 인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죽은 후 독일 곳곳에 세운 동상은 이러한 수상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동상 비스마르크’는 한결같이 투구와 군화, 군도를 갖춘 기마병 차림을 하고 무서운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는, 전의에 불타는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전함까지 있었으니 비스마르크란 이름은 그 자체로 큰 칼처럼 무시무시하다. 그런 그가 사실은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신경쇠약증 환자였다니 놀랍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생태학적 DNA까지 언급한다. 아버지에게 건장한 체격을 물려받았지만,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 탓에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 어머니의 과민한 성격을 이어받았다. 실제 비스마르크는 양면적인 성향이 있었다. 덴마크,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등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동시에 여린 심성과 걸출한 문장력 등 예술가적 기질 또한 두드러졌다. 그가 쓴 외교 문서와 의회 연설문, 아내 요한나에게 보낸 편지는 철혈 정치가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다고 독일 역사가들은 말한다. 평생을 신경쇠약증으로 괴로워한 수상은 수시로 휴양지에서 심신을 추슬러야 할 만큼 병약했다. 류머티즘, 통풍, 위경련, 담석, 황달, 안면신경통, 대상포진, 불면증 등 수많은 병을 동시에 앓은 그는 수상으로 지낸 24년의 세월 중 무려 9년간을 농장 등의 휴식처에서 보냈다.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잠이 오지 않다가 다행히 잠이 들어도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다. 낮에 생각하던 것을 꿈속에서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한번은 독일 지도를 보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위치를 가리키는 점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은 차라리 마음이 아프다. 왼쪽 다리에서 신체 조직의 일부가 썩어가는 노인성 회저병이 시작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닥쳤고 그는 모르핀으로 버텼다. 그가 통증으로 괴로워하며 질러대는 고함 소리가 농장 입구에까지 가 닿았다. 이 쓸쓸하고 비참한 철혈 수상의 마지막 모습을 독일의 국민은 몰랐다. 비스마르크의 가족이 독일 통일을 이룬 국가 영웅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철혈 수상’으로 역사에 남았다. 책은 위에서 언급한 일곱 명의 인물 외에도 다양한 영웅의 본색을 소개한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절대 군주를 자처한 호색한이었고, 가톨릭 수호자로 알려진 이사벨 1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간디가 가장 충격적이다. 금욕주의자였던 간디가 청소년 시기에는 섹스 말고는 어떤 것도 안중에 없었단다. 그 탓에 학교까지 1년을 유급했다고 하니 ‘그’ 간디가 우리가 아는 간디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생각해보면, 역사란 태생적으로 불공정한 기록이다. 승자의 입장, 혹은 기록자의 입장, 혹은 당시 시대적 배경 아래 기록된 것이 역사이므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영웅, 한 가지 성격과 캐릭터로 점철되는 영웅은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런 영웅을 바라는 것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