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연인과 더불어 탄생한 샤넬 향수 |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에게 샤넬의 이름은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퀼팅 백은 예물로 받고 싶은 아이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제품. 패션의 완성이자 마침표라 일컬어지는 향수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남성들의 우상이었던 배우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서 몸에 걸치는 것은 단지 ‘샤넬 N。5’뿐이라고 해서 세계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던 것. 관능적인 향을 지닌 샤넬의 향수는 곧 유혹의 장치와 다름 아니다. 2007년 2월, 무려 10개의 샤넬 향수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발매된다. 이 중 어떤 향을 골라 신혼여행 가방에 넣을 것인지 고민해보기를. |
CUIR DE RUISSIE 뀌르 드 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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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LA PAUSA 28 라 파우자
1928년 남프랑스 그라스 인근의 로끄브룬 마을에 지은 이곳은 샤넬의 스타일이 건축으로 형상화된 것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수녀원의 기억을 떠올려 만든 돌계단을 비롯하여 창틀, 손잡이 심지어 경첩까지 모두 그녀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연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함께 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이지만, 1929년 그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녀가 문화 예술계 인사와 잦은 교류를 했던 만큼 이곳은 그들을 위해 늘 개방되어 있었다.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폴 이리브 등이 머물렀는데, 특히 달리는 정원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 이곳에서 유명한 작품
(위)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28 라 파우자.
카멜리아와 가드니아 그리고 보이 카펠
카멜리아는 샤넬을 상징하는 꽃으로 옷, 브로치, 시계, 가방 장식 등에 널리 활용된다. 당연히 향수로도 만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카멜리아는 향기가 없는 꽃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 포기를 한다면 샤넬이겠는가! 그녀는 카멜리아를 대신해 그 꽃과 생김새가 닮았지만 달콤하고 이국적인 향기를 내는 가드니아에 주목했다. 이 향을 형상화한 것이 1925년에 만들어진 향수 ‘가드니아GARDE'NIA’.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상징물로 여길 만큼 카멜리아를 좋아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첫 번째 연인이자 영원한 사랑이었던 보이 카펠Boy Capel에게 처음으로 받은 꽃다발이 바로 카멜리아였기 때문이다. 석탄 개발 사업에 투자한 것이 성공해 30대에 재력가가 된 그는 샤넬의 인생을 바꿔 놓은 사람이었다. 1910년 샤넬이라는 패션 브랜드의 시작이었던 모자 가게를 여는 데 정신적 후원과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그다. 은행에서 신용 대출을 받게 해주었고 그 덕분에 샤넬은 깡봉 가 21번지에 작업실 구할 수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문화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사교계 여성들 이외에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1920년대를 담은 브아데질과 뀌르 드 뤼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1920년부터 프랑스 사회에선 삶을 즐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광기의 시대로 알려진 이 시기에 파리 여성들은 해방감을 만끽했다. 여성들의 의상은 몸매를 드러내기보다 직선적인 형태로 바뀌었고, 집 안에서 나와 사회 활동을 했으며,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다. 이러한 시대를 반영하듯 샤넬은 1926년, 향수 역사상 최초로 우디 계열의 향을 여성 제품에 사용한 ‘브아데질BOIS DES ILES’을 선보였다. 1927년에는 부츠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러시아 병사들이 사용하던 박달나무 타르의 향기에서 힌트를 얻은 ‘뀌르 드 뤼시CUIR DE RUISSIE’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남성들이 좋아했고, 그들의 향이라 인식되었던 것을 활용해 만든 이 제품들은 당시 중성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BEL RESPIRO 벨 레스피로
1919년 12월 20일, 보이 카펠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샤넬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이 가르슈 언덕에 있는 별장 ‘벨 레스피로’. 공기가 맑은 곳을 의미하는 이곳에서 그녀는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출발을 도모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그녀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가족을 머물게 하기도 했다. 그의 ‘다섯 개의 손가락’과 ‘관악기를 위한 심포니’는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1 프랑스 극작가 앙리 번스타인과 샤넬.
2샤넬의 첫 번째 집인 벨 레스피로.
3샤넬을 짝사랑했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쟈끄 뽈쥬와 여섯 개의 향수
1978년 샤넬에 입성한 쟈끄 뽈쥬Jacques Polge는 샤넬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이다. 코코, 에고이스트, 알뤼르, 샹스 등 1981년 이후 지금까지 선보인 샤넬의 향수는 그의 ‘코’가 만들어낸 작품. 이번에는 샤넬의 삶과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6개의 향을 만들었다. ‘벨 레스피로BEL RESPIRO’, ‘28 라 파우자28 LA PAUSA’, ‘31 뤼 깡봉31 RUE CAMBON’, ‘꼬로망델COROMANDEL’, ‘넘버 18 N。18’, ‘오 드 코롱EAU DE COLOGNE’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향수 명칭은 샤넬과 관련이 있는 장소에서 따서 붙였다.
‘벨 레스피로’, ‘28 라 파우자’는 파리 외곽에 있던 샤넬의 별장이다. 전자는 사랑하는 연인 보이 카펠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그와의 추억이 담긴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옮겨간 곳이고, 후자는 세 번째 연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함께 보내기 위해 지은 곳이었다. 그녀가 문화 예술계 인사와 잦은 교류를 했던 만큼 이곳은 그들을 위해 늘 개방되어 있었다. 올리브 나무, 유칼립투스 그리고 라벤더 향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장 콕토,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살바도르 달리, 폴 이리브 등 당대 진보적인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생활의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무와 꽃 냄새가 어우러져 상쾌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주 는 ‘벨 레스피로’, ‘28 라 파우자’가 지닌 향은 이곳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31 뤼 깡봉31 RUE CAMBON’, ‘꼬로망델COROMANDEL’은 샤넬의 패션 감각과 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고 애장품이다. 1921년 드미트리 대공과 헤어진 후 그녀는 벨 레스피로를 떠나 깡봉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회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오가면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실리적인 이유에서였다. 작업실과 살롱, 부티크를 세운 이곳은 무엇보다 샤넬 스타일의 핵심이자 창조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꼬로망델 스크린Coromandel Screen은 그녀가 아끼는 생활 소품이었다. 파리에서 보이 카펠과 처음으로 함께 살았던 아파트에 장식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칠기의 작업 과정도 이와 관련이 있다. 새, 나무, 꽃 등을 새겨 넣는 시적인 도상학은 일일이 수작업을 해가며 여러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나의 제대로 된 작품으로 완성되는 데, 이는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의 작업 정신과도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넘버 18’은 1977년 방돔 광장 18번지, 샤넬이 수년간 살았던 리츠 호텔의 맞은편에 문을 연 시계와 파인 주얼리 부티크 매장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
모든 위대한 조향사들이 그들만의 ‘오 드 코롱’을 가지고 있듯 샤넬 또한 마찬가지. 쟈끄 뽈쥬는 시트러스 과일과 네롤 리를 혼합하여 가벼운 느낌의 정제된 향을 만들었다. 이렇게 총 10개의 향수로 구성된 ‘샤넬 레 엑스클루시브Chanel les Exclusifs’를 제작하는 데 중심에 있었던 조향사 쟈끄 뽈쥬는 이에 대한 평가를 한 마디로 압축했다.
“향기를 맡으면 알게 될 겁니다”라고.
사실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