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전염병 대유행, 신종 인플루엔자의 기습
전염병 대유행(pandemic)을 불러올 바이러스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사실 너무나 재미나서 중독될 정도다. 온라인 플래시 게임 ‘판데믹 2’에서는 게이머들이 인류를 말살하려는 치명적 세균의 역할을 맡는다. 게이머들은 사전에 설정한 옵션을 사용해 최대한의 인명 피해를 노린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진균류 중 택일하고 습기 내성 여부, 기침이나 재채기 유발 여부, 쥐나 곤충을 매개체로 한 전염 여부 등을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염성이 아무리 강해도 공항을 폐쇄해 다른 나라로 전파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한번 해보면 빠져들게 되는 게임이다. 반면 현재 신종 인플루엔자(A/H1N1·신종 플루)가 전 세계로 급속히 번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섬뜩한 게임이기도 하다. 신종 플루가 집단 히스테리를 불러오고 있는데도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신중을 기하는 한편 무작정 낙관론만 펼친다. 특히 미국은 이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훈련, 자원, 사전 경보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신한다.
실제 상황의 인플루엔자 대유행과 게임상의 가상 상황 둘 다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다음 세계 건강 위기는 어떤 식으로 찾아올까? 그런 위기를 막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학자와 공중보건 전문가가 가장 우려하는 잠재적 전염병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첫째는 동물에게서 발견된 질병이 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감염시키는 경우다.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조류 플루)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발생지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경우다. 웨스트나일뇌염(West Nile Virus),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대표적이다. 셋째는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지닌 경우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슈퍼 박테리아)이 일으키는 질병과 결핵 등이 그 예다. 사실 이런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을 공중보건 히스테리로 치부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구를 황폐화할 만한 전염병의 대유행이 실제로 발생할까? “물론”이라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전염성 질병 전문의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인플루엔자 실무 그룹에 참여하는 데이비드 웨버(David Weber) 박사는 말한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약 1천5백여 종이다. 특히 지난 15년 동안 지리적으로 나타났거나 인간에게서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숱하게 많이 확인됐다.”
지금의 신종 플루(이미 진화한 바이러스다)는 치명적인 모든 요소가 결합된 미래 질병의 전조에 불과할지 모른다. 2003년 아시아를 휩쓴 조류 인플루엔자는 상당히 치명적이긴 하지만 전염성이 강하진 않았다. 희생자는 대부분 조류와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다. 반면 지금의 신종 플루는 전염성이 강하지만 그처럼 치명적이진 않다. 멕시코를 제외한 지역의 감염자 대다수는 며칠간 고열과 기침 증상을 보이다가 회복됐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새로운 바이러스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조류 플루처럼 치명적이면서 신종 플루처럼 급속히 전염되는 바이러스 말이다. “치명적인 동시에 쉽게 전염되는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공중보건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문제”라고 캘리포니아대 전염병학 교수 로버트 킴-팔리(Robert Kim-Farley) 박사는 말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최고 5천만 명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바이러스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자주 변이를 일으킨다. 따라서 ‘슈퍼 인플루엔자’로 진화하는 경우도 여러 가지다. 조류 플루는 전염성이 더 강한 변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 돼지는 인간 플루와 조류 플루에 동시에 감염되기도 한다. 심지어 얼마 전 캐나다의 한 농민은 멕시코에 갔다가 신종 플루에 감염된 채 귀국해 그 바이러스를 자신이 기르던 돼지 20마리에 옮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화로 인한 여행·무역이 바이러스 전파 부추겨
“사람의 경우 일반 계절성 인플루엔자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조류 플루에 감염되면 전염성이 더 강한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진다”고 킴-팔리는 말했다. 이런 동물 바이러스는 돼지와 닭 등 가축과 사람이 서로 밀착된 곳에서 가장 쉽게 인간에게 전염된다. 그러나 여행과 무역이 세계화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는 조금 더 산업화된 지역으로 신속히 퍼져나간다. 신종 플루가 ‘세계의 수도’라 일컫는 뉴욕 시 전체에 퍼진 현상을 보라. 세계화된 경제는 슈퍼 플루의 출현에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진 산업국의 육류 수요가 늘면서 개도국에서 사육하는 돼지, 소, 닭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다. 예컨대 지금의 신종 플루는 멕시코 라글로리아(La Gloria) 마을에서 출현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은 미국 최대의 식품 가공 회사 스미스필드 푸즈(Smithfield Foods)가 소유한 대규모 돼지 사육 농장이 있는 곳이다. 넓은 들판에서 가축을 방목하던 농민들이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지금은 비좁은 아파트 같은 곳에서 가축을 대규모로 기른다. “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가축과 함께 살며 자기 집에서 돼지를 키운다. 게다가 동남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LA까지 가는 데 하루도 안 걸린다”고 킴-팔리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플루엔자 치료제에 대한 내성 문제가 있다. 감염된 사람이 많을수록 치료받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치료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신종 플루가 타미플루(Tamiflu)와 릴렌자(Relenza) 같은 약으로 치료가 가능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워싱턴대 교수이자 <위험한 무역:글로벌 교역 시대의 전염병(Risky Trade: Infectious Disease in the Era of Global Trade)>의 저자 앤 메리 킴벌(Ann Marie Kimball) 박사는 말했다. “하지만 이런 약을 많이 사용할수록 내성이 강해진다. 따라서 신종 플루의 백신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백신 개발은 슈퍼 인플루엔자를 막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금의 신종 플루에 맞춰서 개발한 백신이 그다음의 새로운 변종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종 플루의 전염성과 치명성을 제대로 통제한다면 현재의 위기는 미래의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 의료계가 비상 치료 계획을 재검토하고, 이후 찾아올 전염병 대유행에 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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